고문진보 특강

들어가면서

벽암거사 2026. 3. 10. 20:45

삶의 길을 잃은 당신에게 건네는 보물 상자, 《고문진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전장을 달리는 마라토너입니다. 때로는 한강의 차가운 새벽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러너처럼, 때로는 고요한 도서관 한켠에서 정답 없는 인생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구도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숨 가쁘게 달리는 우리 앞에는 늘 희미한 안개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집값과 주식의 등락, 노후의 불안, 관계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옛 성현들의 문장 속을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머리맡에 두고 평생 읽었다는 한 권의 책을 다시 만났습니다. 바로 《고문진보(古文眞寶)》, 고대의 보배로운 문장을 모은 책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게 된 계기는 중랑구청 평생학습관에서 《고문진보》 강의를 진행하면서였습니다. 수업을 통해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났고, 그들과 함께 고전의 깊이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텄습니다.

《고문진보》는 단순한 문장집이 아닙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사유의 결정체입니다. 한유는 “문장은 도를 싣는 수레”라 했고, 유종원은 “문장을 통해 도를 밝힌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한 **도(道)**는 거창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어 줄 내면의 중심입니다. 시련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삶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정리하며 나는 세 가지 마음을 담았습니다.

첫째, 본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보는 스쳐 지나가는 파편일 뿐, 우리의 내면을 깊이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고전은 다릅니다. 문장을 천천히 읽고 오래 붙들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음이 깊은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공자가 말한 발분망식(發憤忘食), 곧 뜻을 세우고 몰두하여 밥 먹는 것도 잊는 상태가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한 생각에 깊이 잠겨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귀한 공부, **내면의 ‘딥 워크(Deep Work)’**입니다.

둘째, 고전이 주는 현대적 치유입니다.

송나라 진종은 권학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 속에는 황금집이 있고, 옥 같은 미인이 있다.”

이 말은 단순한 권면이 아닙니다.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라는 선언이며, 자기 힘으로 인생을 세우라는 강력한 조언입니다. 고전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조용한 등불입니다.

셋째, ‘종오소호(從吾所好)’의 삶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이 말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선언입니다. 소중한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의 사명감과, 자신이 믿는 가치를 따르겠다는 선비의 기개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속도에 맞추어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지켜내는 삶. 그 안에서 스스로의 기쁨을 발견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가장 후회 없는 인생일 것입니다.

고전을 읽는 일은 단순한 독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메마른 일상에 단비를 내리는 일이며, 우리 삶의 영토를 스스로의 의지로 넓혀 가는 고요한 실천입니다.

 

주희는 말했습니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한 치의 시간, **일촌광음(一寸光陰)**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배움에는 늦은 때가 없습니다. 지금 이 책을 펼치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삶에도 옥이 부딪히는 맑은 울림, **옥종쟁(玉瑽琤)**이 시작될 것입니다.

창가에 앉아 고전을 펼치고 옛 성현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십시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도록 곁에서 호흡을 맞춰 주는 조용한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봄, 가평 서리산 자락에서

인문고전연구소 경인학당 대표 양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