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5언 고풍 장편
1.直中書省-謝靈運(謝康樂)
紫殿肅隂隂 彤庭赫弘敞(자전숙음음 동정혁홍창)
風動萬年枝 日華承露掌((풍동만년지 일화승로장)
玲瓏結綺錢 深沈映朱網(영롱결기전 심침영주망)
紅藥當階翻 蒼苔依砌上(홍약당계번 창태의체상)
兹言翔鳯池 鳴珮多清響(자언상봉지 명패다청향)
信美非吾室 中園思偃仰(신미비오실 중원사언앙)
朋情以鬱陶 春物方駘蕩(붕정이울도 춘물방태탕)
安得凌風翰 聊恣山泉賞(안득능풍한 요자산천상)
붉은 궁전은 으슥하고 침침한데 궁전의 뜰은 밝고도 넓게 트여 있네.
바람은 만년수 가지를 흔들고 햇빛은 승로장(承露掌)에 비치누나.
창에는 동전모양으로 장식한 모습이 영롱하게
깊고 깊게 붉은 창에 비치고 있네
붉은 작약은 뜰에서 나부끼고 푸른 이끼는 섬돌 따라 올라오네.
이곳이 봉황지라 불러든 곳, 패옥이 울리던 맑은 소리 대단했지.
진실로 아름답지만 내집이 아니기에 동산에서 한가롭게 지낼 생각하노라.
벗을 생각하니 가슴만 답답한데 봄날 만물은 바야흐로 신이 났네
어찌하면 바람을 탈 수 있는 날개를 얻어 산천을 마음껏 구경할 수있을까?
**
이 시는 궁중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이질감과 내면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시 속에서 드러나는 ‘아름답지만 내 집이 아니다’라는 감정은 단순히 소박한 삶을 찬미하는 겸손의 태도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화려함을 경험하고 누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일종의 여유에서 나온 수사적 표현이기도 하다. 즉 이 시는 세속적 성공과 부를 충분히 참여해 본 뒤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또 다른 갈망, 더 깊고 본질적인 평안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마지막 구절의 “바람 탈 날개를 얻고 싶다”는 표현은 장자의 대붕을 연상시키며, 현실의 속박과 규범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자유로 도약하고자 하는 초월의 욕망을 내포한다. 이는 단순히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극적 회귀가 아니라, 세속 질서 너머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적극적 비상(飛翔)의 의미다.
외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어느 순간 화려함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자연·고향·벗·일상 같은 본질적 가치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사영운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안정된 삶을 버리고 더 큰 자유를 향해 모험을 선택하는 이들, 정신적 성장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대붕이 하늘로 솟아오르듯 기존 세계를 넘어서는 갈망이 반복된다.
결국 이 시는 화려함보다 마음이 편안한 공간을 찾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세속적 성취 뒤에 찾아오는 본질적 질문—“이 삶이 진정 나의 삶인가?”—을 보여주며, 인간이 언제나 자기 본성을 향해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2.讀山海經-陶淵明
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疎(맹하초목장 요옥수부소)
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중조혼유탁 오역애오려)
旣耕亦已種 時還讀我書(기경역이종 시환독아서)
窮巷隔深轍 頗回故人車(궁항격심철 파회고인거)
欣然酌春酒 摘我園中蔬(흔연작춘주 적아원중소)
微雨從東來 好風與之俱(미우종동래 호풍여지구)
汎覽周王傳 流觀山海圖(범람주왕전 유관산해도)
俛仰終宇宙 不樂復何如(면앙종우주 불락부하여)
초여름 초목이 자라서, 집을 둘러싸고 나무들 빈틈없이 메웠네
뭇 새들은 깃들 곳 있다고 즐거워하고, 나도 또한 내 오두막을 사랑하노니.
밭 갈고 또 씨 뿌렸으니 때는 책읽을 시간 돌아왔다.
호젓한 골목은 깊은 수레자국과 떨어졌으니, 자못 옛 친구의 수레도 돌아가네.
흔연히 봄 술을 따라 마시며, 남새밭의 나물을 뜯어 안주로 한다.
마침 가랑비가 동쪽에서 젖어오고 좋은 바람조차 그와 함께 불어오네
‘주왕전’을 대강 보고 ‘산해도’를 흘려 보았네
넓은 우주를 이리저리 다 보았으니 즐겁지 아니하고 또 어쩌랴!
**
한 인간의 복합적 마음결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초여름의 오두막을 둘러싼 무성한 나무, 새들이 깃들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좁은 골목, 밭을 갈고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고 나물을 뜯는 일상은 그 자체로 평온하다. 그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마련한 작은 세계를 사랑했고, 소박한 일상의 리듬은 그에게 삶의 중심을 되찾아 주었다.
팽택현령의 관직을 벗어던지고 낙향한 후에 이웃들과 농사짓고 살았다. 『주왕전』을 펼쳐 현실 세계의 질서와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산해경』 속 신화적 지도를 훑으며 이상세계에 대한 상상과 도약의 충동을 간직했다. 흙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두 발은 분명 현실에 딛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과 마음 한 귀퉁이는 언제나 신화의 산과 바다, 신인(神人)이 어우러지는 세계를 향해 있었다.
이 모순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이중성—현실을 잊지 않되, 현실에 갇히지도 않는 태도—가 바로 『독산해경』의 중요한 정조를 이룬다.
현실은 그에게 삶의 뿌리를 주었고, 이상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자연의 변화와 작은 술 한 잔에서 기쁨을 느끼면서도, 그는 언제든 넓은 우주로 시선을 띄울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는 “면앙종우주(俛仰終宇宙)”라며,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며 온 우주를 관조하는 마음의 여행으로 하루를 완성한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의 요구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실무와 책임, 생계를 처리해야 하는 동시에, 마음속에는 더 큰 세계를 향한 욕망—쉼, 의미, 창의성, 혹은 다른 방식의 삶—을 품고 산다. 도연명처럼 현실의 일상과 이상에 대한 상상 사이에서 균형잡힌 삶을 사는 것.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가꾸고, 일상의 일과 속에서도 책과 배움으로 시야를 넓히며, 때로는 신화와 예술,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틀 바깥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것.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조용한 자유-땅을 딛고 살아가되, 마음 안에는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둠-’의 방식이다.
3.
慈烏夜啼-白居易
慈烏失其母 啞啞吐哀音(자오실기모 아아토애음)
晝夜不飛去 經年守故林(주야불비거 경년수고림)
夜夜夜半啼 聞者爲沾襟(야야야반제 문자위첨금)
聲中如告訴 未盡反哺心(성중여고소 미진반포심)
百鳥豈無母 爾獨哀怨深(백조기무조 이독애원심)
應是母慈重 使爾悲不任(응시모자중 사이비불임)
昔有吳起者 母歿喪不臨(석유오기자 모몰상불림)
哀哉若此輩 其心不如禽(애재약차배 기심불여금)
慈烏彼慈烏 鳥中之曾參((자오피자오 조중지증삼)
효성스런 까마귀가 그 어미를 잃고, 까악까악 섧게 울고 있네.
밤낮없이 날아가지도 않고, 1년이 넘도록 옛 숲을 지키네.
밤마다 밤중이면 우니, 듣는 이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게 하네.
우는 소리는 흡사, 키워준 은혜를 다 갚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듯하니,
온갖 새들에게 어찌 어미가 없으리오만 유독 그대만이 슬픔에 사무치는가?
틀림없이 어머니의 사랑이 두터워,
너로 하여금 슬픔을 이기지 못하게 하나 보다.
옛날 오기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장사지내려 오지 않았다네.
슬프다! 이런 무리들은, 그 마음이 새만도 못하구나.
효성스런 까마귀여! 저 효성스런 까마귀여! 새 중의 증삼이로구나!
**
깊은 밤 고요 속에서 인간의 마음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을 노래한 고대의 정조로, 낮에는 감추어지던 상실과 그리움이 어둠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어미를 잃은 까마귀가 밤낮으로 울며 지난날 갚지 못한 은혜를 애달프게 토해내는 모습은 이른바 반포지효—어미의 은혜를 갚으려는 자연스런 마음—를 통해 인간이 지녀야 할 근본 정서를 일깨운다. 까마귀조차 어미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데, 인간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이 까마귀의 울음과 대조되는 인물이 오기이다. 출세와 명예를 이유로 어머니의 죽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던 그는 슬픔이 찾아오는 순간조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냉혹함을 보였다. 자연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정조에서조차 멀어진 모습은 자야오제의 슬픔과 정반대 방향에 서 있는 인물상이다.
반대로 증삼은 산에서 나무를 하다 문득 어머니의 아픔을 느끼고 곧장 내려왔다는 효행의 일화를 남겼다. 이는 단지 효의 차원을 넘어, 사랑하는 존재의 고통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깊은 감응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야오제가 포착한 밤의 떨림—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의 울림—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정서는 시대가 흘러 현대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양구의 소초에서 근무하던 한명희 소대장은 궁노루의 울음과 초연이 스친 계곡에서 발견한 무명용사의 묘 앞에서 또 하나의 자야오제를 들었다. 소대원들이 노루를 잡아먹은 뒤 초소를 떠돌며 울던 노루의 소리와, 이름 없이 묻힌 젊은 병사의 묘비 없는 무덤은 전쟁이 남긴 깊은 상실을 밤마다 되살려 주었다. 이 울림은 시 「비목」으로 태어나 시대의 상처를 품은 현대적 자야오제로 남았다.
결국 자야오제의 감정은 반포지효에서 보이듯 가장 기본적이고 진실한 인간의 마음을 가리키며, 오기의 냉혹함은 인간다움의 결핍을, 증삼의 감응은 마음의 깊은 연결을, 한명희의 ‘비목’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상실의 울림을 보여준다.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더욱 진실해지고, 인간의 품격은 바로 그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의 슬픔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들은 함께 말해준다.
4.飮馬長城窟行-無名氏
靑靑河畔草 綿綿思遠道(청청하반초 면면사원도)
遠道不可思 夙昔夢見之(원도불가사 숙석몽견지)
夢見在我傍 忽覺在他鄕(몽견재아방 홀각재타향)
他鄕各異縣 輾轉不可見(타향각이현 전전불가견)
枯桑知天風 海水知天寒(고상지천풍 해수지천한)
入門各自媚 誰肯相爲言(입문각자미 수긍상위언)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객종원방래 유아쌍리어)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호동팽리어 중유척소서)
長跪讀素書 書中竟何如(장궤독소서 서중경하여)
上有加餐飯 下有長相憶 (상유가찬반 하유장상억)
강가의 풀은 짙푸르게 자라고, 내 그리움도 끝없이 이어지네.
그 먼 길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새벽에도 밤에도 꿈에서 그대를 본다.
꿈속에서는 늘 내 곁에 있으나, 깨어보면 다시 머나먼 타향일 뿐.
서로 다른 먼 고을에 흩어져 있어, 뒤척여도 다시 볼 수 없다.
마른 뽕나무만 하늘바람의 차가움을 알고, 바닷물만이 하늘의 추위를 안다.
집에 들어서도 모두 자기 일에 바빠, 누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랴.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와, 내게 잉어 두 마리를 건네주었네. 아이를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그 속에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꿇어앉아 편지를 읽어보니, 그 안에 무엇이 적혔던가?
첫 머리에는 “끼니 잘 챙기라”는 말과, 아래에는“나는 늘 그대를 그리워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
강가에 무성히 자란 풀처럼, 이 시 속 화자의 그리움도 끝없이 이어진다. 멀리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지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 그 끝을 다 헤아릴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어제도 오늘도 꿈속에서 떠난 이를 만난다. 꿈속에서는 늘 가까이 머물러 있으나,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현실의 타향뿐이니, 가까움과 멀어짐이 반복되는 이 심정이 더욱 쓰리다.
멀리 떨어져 서로 다른 곳에 흩어져 있으니 아무리 뒤척여도 다시 얼굴을 볼 수 없고, 그리움은 고요한 밤마다 더 깊어진다. 외로움과 기다림의 감정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낸 마른 나무만이 하늘의 찬 기운을 알고, 바닷물만이 하늘의 냉기를 느끼듯, 그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도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바쁘기만 하다. 누구도 그의 마음을 대신 말해 주지 못하고, 그 외로운 심정을 헤아리는 이도 없다. 그러던 중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이 잉어 두 마리를 전해 주고 떠나는데, 그 속에서 뜻밖에도 편지 한 통이 나온다.
무릎을 꿇은 채 조심스레 펼쳐 본 그 편지에는 거창한 말은 없다. 그저 “끼니를 잘 챙기라”는 소박한 당부와 “늘 그대를 그리워한다”는 짧은 문장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그 어떤 화려한 말보다 더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멀리 있어도 마음만큼은 함께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긴 것이다.
이 절절한 심정은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앵도나무 꽃이 활짝 피었는데, 내가 어찌 너를 그리워하지 않겠느냐.
다만 네가 멀리 있어 손이 닿지 않을 뿐이다.”
이 구절처럼, 사랑은 변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 뿐이다.
누군가가 떠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마음이 여전히 머물러 있으며, 그 마음이 거리와 시간을 넘어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다.
오늘의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메시지 한 줄, 짧은 음성메시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사진 한 장이 곧 이 시 속의 ‘은밀한 편지’가 된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밥 잘 먹어” 같은 짧은 문장이 가장 큰 사랑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멀리 있을수록 깊어지고, 볼 수 없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며,
그 마음 하나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따뜻한 힘이 된다.
5.石壕吏-杜甫
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모투석호촌 유리야착인)
老翁逾墻走 老婦出門看(노옹유장주 노부출문간)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이호일하노 부제일하고)
聽婦前致詞 三男鄴城戍(청부전치사 삼남업성수)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일남부서지 이남신전사)
存者且偷生 死者長已矣(존자차투생 사자장이의)
室中更無人 惟有乳下孫(실중갱무인 유유유하손)
有孫母未去 出入無完裙(유손모미거 출입무완군)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노구역수쇠 청종이야귀)
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급응하양역 유득비신취)
夜久語聲絕 如聞泣幽咽(야구어성절 여문읍유열)
天明登前途 獨與老翁別(야구어성절 독여노옹별)
해가 저물어 석호촌에 투숙했더니 관리가 밤중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할어빚는 담을 너머 달아나고 노부는 문 밖에 나가보네
관리는 호통치며 성난 모습인데 노부의 울음소리는 어찌 그리도 괴로운가
할머니가 앞으로 나와 말하는 것 들려오네.
세 아들은 업성전투에 나갔다오.세 아들은 업성전투에 나갔다오.
맏이가 보낸 편지가 왔는데, 둘째가 새 전투에 죽었다 하더이다.
산 사람은 그래도 억지로라도 살아가기야 하겠지만, 죽은 사람은 영원히 그것으로 끝이라오.
집 안에는 그 외 다른 사람은 없고, 있다면 젖 아래 매달려 있는 손자뿐이라오. 손자가 있어 그 어미는 갈 수가 없으며, 나들이할 온전한 치마조차 없다오.
할머니는 기력은 비록 쇠하였지만, 청컨대 나으리 따라 밤에라도 가겠소이다.
급한 하양 전투에 나가게 되면, 그래도 아침밥 짓는 일은 해낼 수 있을 거요. 밤이 깊어지자 말소리는 끊겼으나 소리 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네. 날이 새어 내 갈 길을 떠나려 할 때, 홀로 할아버지만 나와 작별하였네.
**
〈석호리〉는 전란 속에서 관리들이 밤마다 백성을 강제로 징발하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늙은 남편은 붙잡힐까 담을 넘어 도망치고, 남은 노파는 이미 세 아들을 전쟁터에 보냈으며, 둘째는 최근 전사했다는 슬픈 소식마저 전한다. 집안에는 젖먹이 손자와 그 어미 외엔 아무도 남지 않아, 결국 기력이 쇠한 노파가 자신이 대신 끌려가겠다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전쟁과 가렴주구가 평범한 농민에게 어떤 절망을 안겼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도전이 유배되었던 고려 말기의 나주 농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침입,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농민 생활이 피폐해졌고, 젊은 남성들은 병력으로 끌려가거나 떠돌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바로 이러한 백성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고, 나라가 이미 민생을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국가의 재정과 군사 체제가 무너지고, 권세가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농민이 삶의 터전을 잃는 현실을 보며 고려 체제 자체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로 하여금 새 나라의 필요성을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성계와의 연대가 시작됐다. 이성계는 왜구를 격퇴하고 북방을 안정시키며 군사적 명성을 쌓던 인물이었고, 정도전은 이성계에게서 ‘민본(民本) 국가 건설’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성계 역시 정도전의 개혁 구상과 시대 인식을 신뢰하며 의기투합하였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고려의 부패한 권문세족 체제와 기존 군영 구조를 개혁하고, 토지제도와 조세제도를 새롭게 정비하려는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게 된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 즉 백성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고 전쟁과 수탈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두보의 〈석호리〉가 보여주는 전란 속 농민의 비참한 운명은, 정도전이 나주에서 경험한 고려 말 농촌의 참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국가의 기능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가 농민이라는 점은 동일했다. 그리고 그 절망적 현실을 마주한 지식인의 각성이 곧 새로운 국가를 꿈꾸는 에너지가 되었다는 점도 일맥상통한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을 잡고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된 배경에는 바로 그러한 민생의 비참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절박한 시대적 요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문 고전 강의 > 고문진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강(책2권)7언고풍 장편 (1) | 2025.12.22 |
|---|---|
| 5강 7언 고풍 단편 (2) | 2025.12.16 |
| 4-1 고문진보 5언 고풍 장편 (0) | 2025.12.10 |
| 고문진보 3강-5언고풍 단편 (0) | 2025.12.09 |
| 고문진보 2강 5언고풍단편 (0) | 2025.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