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2권)
1.有所思-劉希夷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낙양성동도리화 비래비거낙수가)
幽閨兒女惜顔色 坐見落花長歎息(유규아녀석안색 좌견락화장탄식)
今年花落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금년화락안색개 명년화개복수재)
已見松柏摧爲薪 更聞桑田變成海(이견송백최위신 갱문상전변성해)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고인무부낙성동 금인환대락화풍)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寄言全盛紅顔子 須憐半死白頭翁(기언전성홍안자 수련반사백두옹)
此翁白頭眞可憐 伊昔紅顔美少年(차옹백두진가련 이석홍안미소년)
公子王孫芳樹下 淸歌妙舞落花前(공자왕손방수하 청가묘무낙화전)
光祿池臺文錦綉 將軍臺閣畵神仙(광록지대문금수 장군대각화신선)
一朝臥病無相識 三春行樂在誰邊(일조와병무상식 삼춘행락재수변)
婉轉蛾眉能幾時 須臾鶴髮亂如絲(완전아미능기시 수유학발난여사)
但看古來歌舞地 惟有黃昏鳥雀飛(단간고래가무지 유유황혼조작비)
낙양성 동쪽에 복숭아꽃과 오얏꽃
바람에 날려 이 집 저 집으로 흩날려 떨어진다.
규중에 있는 젊은 여인은 자기 얼굴빛이 쇠할까 아까워하며
떨어지는 꽃을 보며 앉아서 길게 한숨짓는다.
올해 꽃이 지면 사람의 얼굴도 변할 텐데
내년에 꽃이 다시 필 때 과연 누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인가.
이미 소나무와 잣나무가 꺾여 땔감이 되는 것을 보았고,
뽕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말도 들었다.
옛사람은 다시 낙양성 동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 사람만이 바람에 지는 꽃을 마주하고 있다.
해마다 해마다 꽃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다.
한창 젊고 얼굴이 붉은 이들에게 말하노니
반쯤 죽은 듯한 백발의 노인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
이 백발의 노인도 참으로 가련하지만
그 역시 옛날에는 젊고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공자와 왕손들이 향기로운 나무 아래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지는 꽃 앞에서 즐기던 때가 있었다.
광록대부의 연못과 누대에는 비단 무늬 장식이 가득했고,
장군의 누각에는 신선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병이 들어 눕자 알아주는 이 하나 없으니
봄날의 즐거움은 이제 누구 곁에 있는가.
아름다운 눈썹과 고운 얼굴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잠깐 사이에 머리는 희어져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변한다.
옛날에 노래와 춤이 있던 곳을 바라보니
지금은 황혼 속에 새들만 날고 있을 뿐이다.
**
봄이 오면 주변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한다. 작년에도 보았고, 재작년에도 보았던 꽃들이 같은 자리에 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말을 하는 얼굴은 매번 조금씩 달라져 있다. 꽃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변하지 않는 쪽은 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다.
꽃은 피고 지는 일을 멈추지 않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우리는 해마다 조금씩 늙어 간다. 올해의 얼굴은 작년과 같지 않고, 내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젊을 때는 이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은 충분하고, 내일은 당연히 올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떨어지는 꽃잎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이별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꽃이 지는 속도가 빨라 보이고, 그 속도에 나의 시간이 겹쳐진다.
올해 꽃이 지면, 내 얼굴도 그만큼 변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내년에 다시 피는 꽃을 과연 내가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게 될지
문득 확신할 수 없어진다.
세상은 수없이 바뀌어 왔다. 한때 단단해 보이던 것들은 사라졌고,
영원할 것 같던 자리들은 흔적도 없이 변했다.
사람의 젊음과 권세, 명성과 아름다움도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잠시 빛났다가, 어느 날 조용히 물러난다.
젊은 사람들에게 늙은 이는 종종 먼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늙은 이는 알고 있다. 자신도 한때는 그 젊은 얼굴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젊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충분히 지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을 비관하라는 것이 아니다.
꽃이 다시 피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언젠가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해는 저물고 새들은 날 것이다. 꽃은 또 피고, 또 질 것이다.
그 풍경 속에 우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의 봄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계절로 대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의 얼굴과 마음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진지하게 살아보자.
꽃은 다시 피지만, 우리는 지금 이 한 번뿐이니까.
2.荔枝嘆 - 蘇軾
十里一置飛塵灰 五里一堠兵火催(십리일치비진회 오리일애병화최)
顚坑仆谷相枕藉 知是荔支龍眼來(전갱북곡상침자 지시여지용안래)
飛車跨山鵠橫海 風枝露葉如新采(비거과산곡횡해 풍지노엽여신채)
宮中美人一破顔 驚塵濺血流千載(궁중미인일파안 경진천혈류천재)
永元荔枝來交州 天寶歲貢取之涪(영원여지래교부 천보세공취지배)
至今欲食林甫肉 無人舉觴酹伯游(지금욕식임포육 무인거상부백류)
我願天公憐赤子 莫生尤物為瘡痏(아원천공린적자 막생우물위창유)
雨順風調百穀登 民不飢寒為上瑞(우순풍조백곡등 민불기한위상서)
君不見武夷溪邊粟粒芽 前丁後蔡相籠加(군불견무이계변속입아 전정후채상농가)
爭新買寵各出意 今年鬥品充官茶(쟁신매총각출의 금년투품충관채)
吾君所乏豈此物 致養口體何陋耶(오군소폄기차물 치양구체하루야)
洛陽相君忠孝家 可憐亦進姚黃花(낙양상군충효가 가련역진요황화)
십 리마다 역참을 두고 먼지가 날리고,
오 리마다 봉화를 올리듯 군사를 재촉한다.
구덩이에 넘어지고 골짜기에 쓰러져 사람들이 서로 베개 삼아 죽어 가는데,
이 모든 참상이 여지와 용안을 실어 나르기 위함임을 알게 된다.
수레는 날듯이 산을 넘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가지엔 바람이 스치고 잎엔 이슬이 맺혀 막 따온 듯 싱싱하다.
그러나 궁중의 미인이 잠시 얼굴을 펴 웃는 그 순간,
길 위에서는 피가 튀어 그 원한이 천 년을 흘러간다.
영원 연간에도 여지는 교주에서 올라왔지만, 천보 연간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진상하는 수량이 배로 늘었다.
지금에 와서 사람들은 이 모든 사치를 부추긴 이임보의 살을
씹어 먹고 싶어 하지만,
그를 위해 술잔을 들어 제사 지내는 이조차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에 빈다.
백성을 자식처럼 가엾게 여겨 달라고.
사람을 해치는 요사스러운 아름다움은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비가 순하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곡식이 잘 여물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라에 내릴 가장 큰 상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이산 시냇가의 어린 차싹조차 앞에서는 정씨, 뒤에서는 채씨가
서로 다투어 독점하려 하고, 새로움을 다투며 총애를 사기 위해
각자 꾀를 내어 올해는 차의 품질 경쟁으로 관청을 채운다.
임금에게 정말로 부족한 것이 이런 물건들일까.
입과 몸을 기르는 데만 마음을 쓰는 것이
어찌 이토록 천박한가.
낙양의 재상 집안은 충성과 효도로 이름났건만,
그들조차도 결국은 귀한 요황 모란을 바치니, 이 또한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
“하나의 사치품을 위해 사회 전체가 과열되는 풍경에 대한 고발장”
십 리마다 역참을 두고 달리던 길은,
오늘날로 치면 전국 물류망과 특송 시스템이 총동원된 상황이다.
하루라도 늦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밤을 새우고, 현장은 과로로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쓰러지고, 누군가는 조용히 탈락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알지 못한다. 그저 “신선하다”, “빠르다”고 말할 뿐이다.
수레가 산과 바다를 넘듯, 오늘날의 자본과 권력은
국경과 법, 윤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포장된 상품은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그 뒤편에는 장시간 노동과 희생이 쌓여 있다. 궁중의 미인이 웃는 장면은, 지금의 유명인·권력자·소수 상층의 만족을 상징한다. 그 한 번의 만족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피와 원한이 누적된다.
처음에는 ‘있으면 좋은 것’이었지만, 곧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고,
마침내 ‘더 많아야 하는 것’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사치를 설계한 자들은 역사 속에서 이미 심판받았지만,
그 구조는 형태만 바꾸어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에 빈다. 이것은 종교적 기도가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정상화를 향한 절규이다.
화려한 상품이 아니라 백성이 굶지 않는 사회,
경제가 안정되고 삶이 지속 가능한 상태,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진짜 ‘성과 지표’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지에서 차로, 차에서 또 다른 사치품으로 옮겨갈 뿐이다.
새로운 유행, 프리미엄, 한정판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줄을 서고, 기업과 권력은 그 욕망을 이용해 더 큰 이익과 충성을 요구한다.
마지막의 요황(千葉黃花) 모란은 도덕적 명분조차도 결국 사치의 흐름에 편입되는 장면이다. 가장 바르고 모범적인 집안조차 시스템 밖에 서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다.
<7권>장단구
3.將進酒-李白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군불견 황하지수천상래 분류도해불부회)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군불견 고당명경비백발 조여청사모성설)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인생득의수진환 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천생아재필유용 천금산진환부래)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팽양재우차위락 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杯莫停(잠부자 단구생 장진주 배막정)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傾耳聽(여군가일곡 청군위아경이청)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종고찬옥부족귀 단원장취불원성)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고래성현개적막 유유음자류기명)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진왕석시연평락 두주십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주인하위언소전 경수고취대군작)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오화마 천금구 호아장출환미주 여이동소만고수)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와
내달리듯 흘러 바다에 이르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또 보지 못했는가.
높은 집 밝은 거울 앞에서 흰 머리를 슬퍼하는 모습을.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던 머리카락이 저녁이면 눈처럼 희어지는 것을.
이렇듯 인생은 덧없으니, 뜻을 얻었을 때에는
마땅히 기쁨을 다 누려야 하며, 금 술잔을 비워 둔 채
헛되이 달만 마주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내렸으니 반드시 쓰일 곳이 있을 것이요,
천금을 모두 흩어 버린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양을 삶고 소를 잡아 크게 즐기며 살아가자.
한 번 마신다면 삼백 잔쯤은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잠부자여, 단구생이여, 술을 가져오라. 잔을 멈추지 말라.
내가 그대들을 위해 노래할 테니 부디 귀 기울여 들어 달라.
종과 북이 울리고 옥 같은 음식이 차려진다 한들
그것이 어찌 귀하다 하겠는가.
나는 다만 길게 취해 살기를 바랄 뿐, 차라리 맑게 깨어 있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예로부터 성현이라 불린 이들 또한 대개는 고독과 적막 속에 묻혔고,
오직 술을 마신 사람들만이 그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옛날 진왕이 평락에서 연회를 열어 비싼 술을 아끼지 않고 즐겼던 일처럼,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
어서 술을 사 와 그대와 마주 앉아 마시자.
오화마와 천금의 갖옷이라도 아이를 불러 내다 팔아
좋은 술로 바꾸어 오라.
그리고 그 술로 그대와 함께 만고에 쌓인 시름을 씻어 버리자.
**
시에서 황하의 물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우리는 모두 그 물가에 서 있다.
하루하루는 흘러가고,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나중에”를 말하며 살아간다. 이백은 그 태도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는 묻는다. 그대는 정말 보지 못했는가, 시간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흘러가는지를. 아침과 저녁 사이에 사람이 늙어 버리는 현실을. 그래서 “즐겨라”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쾌락을 소비하라는 말이 아니다.지금의 자신을 유예하지 말라는 선언이다.
기회가 왔을 때 움켜쥐지 못하고, 가능성을 스스로 의심하며 미루는 삶을
이백은 가장 허망한 인생이라 본다.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주었다”는 구절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자기 부정에 대한 거부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할인하지 말라는 뜻이다.
돈을 잃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이 소모되는 데에는
무감각해진 삶을 그는 경멸한다.
술과 연회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사회가 정한 성공 경로에서 밀려났더라도, 권력과 제도에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자기답게 살아내는 태도만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백은 성현조차 고독 속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는 “착하게 살면 보상받는다”는 안이한 위로를 거부하는 태도다.
역사는 언제나 정직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마지막에 말과 갖옷까지 팔아 술을 마시자는 장면은 파괴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다. 체면·소유·미래 불안보다 지금의 진실한 감정과 관계를 택하겠다는 선언이다.
함께 마시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시름을 씻어 내는 순간만큼은
삶이 공허한 생존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4.行路難-張籍
湘東行人長歎息 十年離家歸未得(상동행인장탄식 십년이가귀미득)
敝裘羸馬苦難行 僮僕盡飢少筋力(폐구이마고난행 동복진기소근력)
君不見狀頭黃金盡 壯士無顔色(군불견상두황금진 장사무안색)
龍蟠泥中未有雲 不能生彼昇天翼(용반니중미유운 불능생피승천익)
상강 동쪽 지나가는 나그네 길게 탄식하고 집을 떠나 십년 째 돌아가지 못하네
옷은 해지고 말은 여위어 가는 길이 몹시 힘이들고
하인들도 모두 굶주려 근력이 없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머리맡에 황금 떨어지면
장사도 안색이 변하고
용도 진흙 속에 서린채 구름을 타지 못하면
저 하늘에 오를 날개 얻을 수 없음을.
**
화자는 길 위에 선 사람이다.
상강 동쪽을 떠도는 나그네는 십 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발길마다 한숨을 달고 산다. 시간은 흘렀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닳아버린 옷과 여윈 말은 그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함께 길을 나선 하인들마저 굶주려 힘을 잃었으니, 더 이상 개인의 고생을 넘어 삶 전체가 막혀 있는 상태다.
시인이 말하는 ‘행로난’은 단순히 길이 험하다는 뜻이 아니다. 능력과 뜻을 지녔음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아무리 애써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 좌절을 가리킨다.
“머리맡의 황금이 다하면 장사도 안색을 잃는다”는 구절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냉혹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재능과 기개가 있어도 자원이 끊기면 존엄마저 흔들리는 세상, 이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마지막의 비유는 더욱 절실하다.
용은 본래 하늘로 오를 존재지만, 구름이 없으면 진흙 속에 웅크릴 수밖에 없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때와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 비극이다.
날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펼칠 조건이 오지 않은 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말한다. 좌절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며,
정체된 시간은 가치 없음의 증명이 아니다.
구름 없는 하늘 아래의 용처럼, 사람도 때를 기다리며 땅에 머물러야 하는 순간이 있다.
5.薄薄酒-蘇軾
*밀주의 鄕貢進士인 趙明叔(조명숙:名 杲卿)의 말을 소재로 그 뜻을 미루어 樂府體(악부체)로 지은 것*
薄薄酒勝茶湯 粗粗布布勝無裳(박박주승다탕 추추포승무상)
醜妻惡妾勝空房 五更待漏靴滿霜(추처악첩승공방 오경대누위만상)
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涼 珠襦玉柙萬人相送歸北邙
(부여삼복일고수족배창량 주유옥합만인상송귀배망)
不如懸鶉百結獨坐負朝陽 生前富貴死後文章
(부여현순백결독좌부조양 생전부귀사후문장)
百年瞬息萬世忙 夷齊盜跖俱亡羊(백년순식만세망 이제도척구망양)
不如眼前一醉是非憂樂兩都忘 (부여안전일취시비우낙량도망)
텁텁한 술이라도 차보다는 낫고
거칠고 거친 삼베옷이라도 치마 없는 것보다 낫고
추한 아내와 악한 첩이라도 빈 방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낫다
새벽에 서리 가득 낀 신 신고 조회 시간 기다리는 것은
삼복 더위에 해 높이 솟도록 잠자며 북창의 시원한 바람에 만족함보다 못하며
구슬 저고리와 바지 입고 만인의 환송받으며 북망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누더기 기운 옷입고 따뜻한 아침 햇살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못하니라
살아서 부귀 누리고 죽은 뒤 문장 남기나
백년도 순식간이고 만세도 빠르기만 하구나
백이숙제와 도척도 모두다 본성을 잃은 삶이니
지금 눈 앞에 한 번 취하여
옳고 그름과 근심 즐거움을 모두 잊는 것만 못하니라
**
디오게네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아니 가진 것을 스스로 버린 사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를 찾아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을 때,
그는 잠시 눈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햇빛을 가리지 말아 주시오.”
그 말은 권력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미 충분한 사람에게 제국은 필요 없었다.
엷은 술 한 잔이 차보다 낫고, 거친 옷 한 벌이 벌거벗음보다 낫다는 시의 첫 구절을 읽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디오게네스를 떠올린다.
최선이 아니라 지금의 충족을 말하는 태도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을 유보할 수는 없다.
못난 아내, 성질 사나운 첩이라도 빈방보다는 낫다는 구절에는
냉혹할 만큼 솔직한 인간 이해가 담겨 있다. 사람은 이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산다. 완벽한 고독은 철학자의 포즈일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이 시는 묻는다. 구슬 옷과 옥 관에 싸여 수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묻히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인가. 차라리 한여름 낮, 북창의 바람을 맞으며
몸이 원하는 만큼 잠을 자는 하루가 더 값진 것은 아닌가.
이는 카르페 디엠의 정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의 영광이나 죽은 뒤의 명성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말라.
사후의 평가가 삶의 기준이 되는 순간,
현재는 늘 부족해진다. 생전에 부귀를 누리고,
죽어서는 글로 이름을 남긴다 한들
그 모든 판단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일 뿐,
당사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백이도 도척도 결국 같은 길로 사라진다는 이 시의 결론은
도덕을 부정하기보다는 도덕조차 삶을 대신 살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눈앞에서 한 번 취해
시비와 근심, 기쁨과 슬픔을 모두 잊으라고. 이 취함은 도피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전적인 집중이다.
디오게네스가 원한 것도, 카르페 디엠이 말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다. 지금 이 순간을 빼앗기지 않는 삶.
알렉산드로스는 세계를 정복했지만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원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는 지금도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좋은 삶이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비추고 있는 햇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상태이다.
6.
蜀道難 -李白
噫吁嚱 危乎高哉(희우희 위호고재)
蜀道之難 難於上青天(촉도지난 난어상청천)
蠶叢及魚鳧 開國何茫然(잠총급어부 개국하망연)
爾來四萬八千歲 不與秦塞通人煙(이래사만팔천세 불여진새통인연)
西當太白有鳥道 可以橫絕峨眉巔(서당태백유조도 가이횡절아미전)
地崩山摧壯士死 然後天梯石棧相鉤連(지붕산최장사사 연후천제석잔상구련)
上有六龍回日之高標 下有衝波逆折之回川
(상유육룡회일지고표 하유충파역절지회천)
黃鶴之飛尚不得過 猿猱欲度愁攀援(황학지비상부과 원노욕도수반원)
青泥何盤盤 百步九折縈巖巒(청니하반반 백보구절영암만)
捫參歷井仰脅息 以手撫膺坐長歎(문삼력정앙협식 이수무응좌장탄)
問君西遊何時還 畏途巉巖不可攀(문군서유하시환 외도참암불가반)
但見悲鳥號古木 雄飛雌從繞林間(단견비조호고목 웅비자종요림간)
又聞子規啼夜月 愁空山(우문자규제야월 수공산)
蜀道之難 難於上青天(촉도지란 난어상청천)
使人聽此凋朱顏(사인청차조주안)
連峯去天不盈尺 枯松倒掛倚絕壁(연봉거천부영척 고송도괘의절벽)
飛湍瀑流爭喧豗 砯崖轉石萬壑雷(비단폭류쟁훤회 빙애전석만학뢰)
其險也若此 嗟爾遠道之人(기험야여차 차이원도지인)
胡爲乎來哉(호위호래재)
劍閣崢嶸而崔嵬 一夫當關(검각쟁영이최외 일부당관)
萬夫莫開 所守或匪親(반부막개 소수혹비친)
化爲狼與豺 朝避猛虎(화위낭여시 조피맹호)
夕避長蛇 磨牙吮血(석피장사 마아연혈)
殺人如麻 錦城雖云樂(살인여마 금성수운락)
不如早還家 蜀道之難(부여조환가 촉도지란)
難於上青天 側身西望長咨嗟(난어상청천 측신서망상자차)
아! 아이고, 위험하고도 높구나!
이게 길이냐, 절벽이냐.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니라, 하늘로 기어오르는 벼랑이로다.
촉으로 간다는 것이, 어찌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쉽겠는가.
아득한 옛날에 잠총과 어부가 나라를 열었다지만,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
사만 팔천 해 동안이나 진나라와 사람의 연기가 서로 닿지 않았으니,
이 산들이 스스로 벽이 되어 세상을 가로막았던 게다.
서쪽 태백산 아래엔 새나 겨우 지나는 길이 있다더니,
그 길마저 아미산 꼭대기를 가로질러야 한단 말이냐.
땅이 무너지고 산이 부서져 장정들이 죽고 나서야,
하늘에 사다리 매달 듯 돌길을 이어 놓았구나.
아이고, 이 길은 사람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
사람 목숨으로 억지로 얻어낸 길이로다.
위로 올려다보면 해를 끄는 여섯 마리 용이 돌아갈 만큼 높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살이 거꾸로 부딪히며 소용돌이친다.
황학도 날다 돌아서고,
재빠르다는 원숭이도 붙잡을 데를 찾다 겁을 먹겠구나.
청니령은 또 왜 이리 구불구불한가.
백 걸음을 가기도 전에 아홉 번이나 꺾이며 바위를 감아 도는구나.
아이고 숨 막혀라.
별을 더듬고 별자리를 지나 고개를 들고 헐떡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저앉아 긴 한숨만 내쉰다.
묻고 싶다.
서쪽으로 가는 이여, 도대체 언제 돌아올 셈인가.
이 험한 길에 붙잡을 곳 하나 없는데 말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슬피 우는 새들뿐이다.
늙은 나무에서 울부짖고,
수놈은 암놈을 따라 숲을 빙빙 도는구나.
또 자규새가 운다.
달 밝은 밤, 빈 산을 울음으로 채우는구나.
아이고, 이 소리를 듣고 어찌 얼굴빛이 시들지 않겠는가.
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말라 죽은 소나무는 거꾸로 절벽에 매달렸다.
급한 물과 폭포는 서로 소리를 다투고,
굴러떨어지는 바위는 온 골짜기를 우레처럼 울린다.
아이고, 이렇게 험한데
그대는 무엇을 믿고 이 길로 오는가.
마침내 검각에 이르니,
사람 하나가 길을 막으면 만 명도 어찌하지 못하겠구나.
지키는 자가 만일 제 사람이 아니면,
그 즉시 이리와 승냥이로 변하리라.
아침에는 호랑이를 피하고,
저녁에는 긴 뱀을 피해 다니며,
이빨을 갈고 피를 빨아 사람 죽이기를 삼베 베듯 하는구나.
비단 같은 성도가 즐겁다 한들 무엇하랴.
아이고, 차라리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
이 길 끝에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를 두려움뿐이니 말이다.
아! 아이고, 촉으로 가는 길이여.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구나.
나는 몸을 비껴 서서 서쪽을 바라본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길게, 길게 탄식할 뿐이로다.
**
이백의 〈촉도난〉을 읽다 보면, 시 속의 길은 좀처럼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위는 겹겹이 쌓여 하늘을 막고, 물은 절벽을 때리며 울부짖는다. 황학조차 날아 넘지 못하고, 원숭이조차 손을 뻗다 물러선다. 이 길은 처음부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 길을 건너려 한다. 아니, 건너지 않을 수 없다.
이백은 촉도의 험난함을 말하지만, 정작 그가 가리키는 것은 산길만이 아니다.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는 탄식은 자연을 향한 감탄처럼 들리지만, 끝내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길이 험한 것은 산 때문이 아니라, 그 길을 지나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 때문이다.
시를 따라가다 보면 촉도는 점점 높아진다. 신화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별자리를 손으로 더듬는 높이에 이른다. 이백은 일부러 과장한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인간에게 주는 압박과 공포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 압도감 앞에서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부여잡고 앉아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 역시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그렇게 멈춰 앉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촉도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욱 섬뜩하다. 슬피 우는 새, 달밤의 자규, 골짜기를 울리는 폭포와 낙석의 굉음. 이백은 보여주기보다 들려준다. 길의 험함은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귀를 통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그 소리는 불안이고, 예감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경고다.
그러나 시의 가장 무거운 부분은 마지막에 이르러 드러난다. 검각에 이르면 길은 더 이상 자연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명이 뚫지 못하는 곳, 그 자리를 잘못 맡은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는 곳. 이백은 말한다. 세상이 위험한 이유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권력을 쥔 자의 마음이 험해질 때, 길은 곧 피로 물든다.
그래서 그는 권한다. 비단처럼 화려한 도시가 있다 해도, 차라리 일찍 돌아가라고. 이 말은 도피의 권유가 아니다. 중심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몰려드는 곳, 욕망과 권력이 교차하는 곳이 반드시 삶의 목적지는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시의 끝에서 이백은 서쪽을 바라보며 몸을 비껴 선다.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본다. 그것이 이백의 자세다. 그는 세상을 외면하지 않지만, 세상 속에 함몰되지도 않는다. 촉도는 여전히 험하지만, 그는 그 험함을 꿰뚫어 보고 노래함으로써 길 위에 선다.
〈촉도난〉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오르려는 길은 어떤 길인가. 그것은 자연이 험한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이 험한가.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앞에서, 끝까지 오르려 하는가, 아니면 잠시 몸을 기울여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가.
이백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긴 탄식으로 우리를 남겨 둔다.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길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촉도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7.浩浩歌-馬才
浩浩歌 天地萬物如吾何(호호가 천지만물여오아여하)
用之解帶食太倉 不用拂枕歸山阿(용지해대식태창 불용불침귀산아)
君不見渭川漁父一竿竹 莘野耕叟數畝禾(군불견위천어부일간죽 신야경수수무화)
喜來起作商家霖 怒後便把周王戈(희래기작상가림 노후변파주왕과)
又不見子陵橫足加帝腹 帝不敢動豈敢訶(우불견자릉횡족가제복 제불감동기가가)
皇天爲忙逼 星宿相擊摩(황천위망벽 성숙상격마)
可憐相府癡 邀請先經過(가련상붙이 요청선경과)
浩浩歌 天地萬物如吾何(호호가 천지만물여오아여하)
屈原枉死汨羅水 夷齊空餓西山坡(굴원왕사멱라수 이제공아서산파라)
丈夫犖犖不可覊 有身何用自滅磨(장부락락불가미 유신하용자멸마)
吾觀聖賢心 自樂豈有他(오관성현심 자락기유타)
蒼生如命窮 吾道成蹉跎(창생여명궁 오도성차타)
直須爲弔天下人 何必嫌恨傷丘軻(직수위조천하인 하필혐한상구가)
浩浩歌 天地萬物如吾何(호호가 천지만물여오아여하)
玉堂金馬在何處 雲山石室高嵯峨(옥당금마재하처 운산석실고차아)
低頭欲耕地雖少 仰面長嘯天何多(저두욕경지수소 앙면장소천하다)
請君醉我一斗酒 紅光入面春風和(청군취아일두주 홍광입면춘풍화)
드넓고 호방한 노래여.
하늘과 땅, 온갖 만물이 나를 어찌하랴.
나를 쓰면 띠를 풀고 나라의 큰 곡식을 먹을 것이고,
쓰지 않으면 베개를 털고 산골로 돌아가리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위수 가의 어부가 한 대의 낚싯대만 가지고 살던 것을,
신야의 늙은 농부가 몇 이랑의 곡식만 일구던 것을.
기쁨이 오면 일어나 장사 집에 단비가 되어 주고,
노하면 곧바로 임금의 창을 잡기도 하였네.
또 보지 못했는가,
엄자릉이 다리를 뻗어 황제의 배 위에 얹었으나
황제가 감히 움직이지도 꾸짖지도 못하던 일을.
하늘조차 바쁘게 몰아붙이고
별과 별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세상에서,
재상 집안의 어리석은 자들은
앞다투어 나를 불러 먼저 들르라 청하는구나.
드넓고 호방한 노래여.
하늘과 땅, 온갖 만물이 나를 어찌하랴.
굴원은 억울하게 멱라수에서 죽었고,
백이와 숙제는 헛되이 서산 언덕에서 굶어 죽었네.
대장부는 뚜렷하여 매일 수 없으니,
몸이 있으면서 어찌 스스로를 닳게 하겠는가.
내가 보건대 성현의 마음은
스스로 즐거울 뿐, 다른 뜻이 있겠는가.
백성의 삶이 목숨처럼 궁핍해지니,
나의 도 또한 세상에서 지체되고 말았네.
마땅히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조문할 일이지,
어찌 미워하고 원망하여 공자와 맹자를 상하게 하겠는가.
드넓고 호방한 노래여.
하늘과 땅, 온갖 만물이 나를 어찌하랴.
옥당과 금마 같은 화려한 조정은 어디에 있고,
구름 낀 산과 돌방만 높고 험하구나.
고개 숙여 밭을 갈려 하나 땅은 비록 적고,
얼굴 들어 길게 휘파람 부니 하늘은 얼마나 넓은가.
그대여, 나를 위해 한 말 술에 취하게 하라.
붉은 기운이 얼굴에 오르니 봄바람이 화창하구나.
**
대장부의 크기는 지위나 성취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쓰이면 나아가고, 쓰이지 않으면 물러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곧 호연한 정신이다. 굴원처럼 분노에 몸을 던지지도 않고, 백이와 숙제처럼 자신을 굶겨 절개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몸이 있는데 어찌 스스로를 마멸하겠는가, 세상이 나를 쓰지 않아도 하늘은 여전히 넓고, 고개를 들면 숨 쉴 자리는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정이나 성공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의 크기다. 바로 이 점에서 〈浩浩歌〉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세상에 끌려가지 않는 자유와 온화한 존엄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다
8.茶歌-盧仝
日高丈五睡正濃 軍將扣門驚周公(일고장오수정농 군장구문경주공)
口傳諫議送書信 白絹斜封三道印(구전간의송서신 백견사봉삼도인)
開緘宛見諫議面 首閱月團三百片(개함완견간의면 수열월단삼백편)
聞道新年入山裏 蟄蟲驚動春風起(문도신년입산리 칩충경동춘풍기)
天子須嘗陽羨茶 百草不敢先開花(천자수상양선다 백초불감선개화)
仁風暗結珠蓓蕾 先春抽出黃金芽(인풍암결주배뢰 선춘추출황금아)
摘鮮焙芳旋封裹 至精至好且不奢(적선배방선봉과 지정지호차불사)
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지존지여합왕공 하사변도산인가)
柴門反關無俗客 紗帽籠頭自煎喫(시문반관무속객 사모롱두자전끽)
碧雲引風吹不斷 白花浮光凝碗面(벽운인풍취부단 백화부광응완면)
해가 한 발이나 높도록 잠이 바로 깊었는데,
군장이 문을 두드려 주공의 꿈에서 놀라 깨어나게 하였네.
입으로 전해 말하길 간의대부가 서신을 보냈다 하고,
흰 비단에 비스듬히 봉하여 봉인이 세 겹이나 찍혀 있었네.
봉함을 열자 간의의 얼굴이 바로 보이는 듯하고,
먼저 펼쳐 보니 둥근 월단차가 삼백 편이나 되었네.
새해가 되자 산속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숨은 벌레마저 놀라 일어나 봄바람이 이는구나.
천자가 반드시 양선차를 맛보아야 하니,
온갖 풀들이 감히 먼저 꽃을 피우지 못하였네.
어진 바람 속에서 은근히 구슬 같은 꽃망울이 맺히고,
봄보다 앞서 황금빛 새싹이 돋아났네.
신선할 때 따서 향을 살려 덖고 곧 봉하여 싸매었으니,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좋되 사치스럽지는 않았네.
지존께서 드시고 남은 것은 마땅히 왕공에게 돌아갈 터인데,
무슨 일로 산속에 사는 내 집에까지 이르렀는가.
사립문을 도로 닫아 속된 손님을 끊고,
사모를 눌러쓰고 스스로 차를 달여 마셨네.
푸른 김은 바람에 이끌려 끊이지 않고,
하얀 거품은 빛을 띠어 사발 위에 맺혀 있었네.
**
당나라 중‧후기, 황권과 귀족 문화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던 시대의 공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시인은 한낮이 되도록 깊이 잠들어 있다가 군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이는 황실의 명령이 은둔한 선비의 삶까지도 가차 없이 침투하는 시대 현실을 보여준다. 곧이어 간의대부가 보낸 서신과 삼중으로 봉인된 흰 비단 봉투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황제의 권위와 국가 제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드러난다.
봉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월단차 삼백 편이다. 이는 당시 황제에게 진상되던 최고급 공납차로, 차 문화가 이미 극소수 권력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새해가 되면 이 차를 따기 위해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고, 그로 인해 아직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마저 봄바람에 놀라 깨어난다고 말한다. 이는 황제의 한 잔을 위해 자연의 질서조차 앞당겨지는 현실을 은근히 드러내며, 황권의 절대성을 풍자적으로 비춘다. 천자가 양선차를 맛보기 전에는 온갖 풀들이 감히 먼저 꽃피우지 못한다는 표현 역시, 자연마저 권력 앞에서 순서를 지키는 시대의 위압을 과장하여 보여준다.
시인은 권력의 손에 들어가기 이전의 차로 시선을 돌린다. 어진 바람 속에서 구슬 같은 꽃망울이 맺히고, 봄보다 먼저 황금빛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은 차가 본래 자연과 덕에서 비롯된 존재임을 말해 준다. 신선할 때 따서 향을 살리고 정성껏 덖어 봉하는 과정 또한, 차의 귀함이 사치가 아니라 절제와 공력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황제와 왕공에게 돌아가야 할 차가 어찌하여 산속에 사는 자신에게까지 왔는지를 묻는 대목에서, 시는 분명한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권력의 정점에서 출발한 물건이 권력을 멀리한 은자의 집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차의 진정한 자리가 어디인가를 되묻게 한다. 시인은 사립문을 닫고 속세의 손님을 끊은 채, 사모를 눌러쓰고 스스로 차를 달여 마신다. 차는 더 이상 정치적 상징도, 사회적 과시도 아닌, 오롯이 개인의 내면을 맑히는 도구가 된다.
마지막으로 사발 위에 피어오르는 푸른 김과 하얀 거품의 빛은, 모든 권력과 소란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고요한 순간을 형상화한다. 이 장면에서 차는 자연과 인간, 감각과 정신이 잠시 하나로 만나는 매개가 된다. 이 시는 황실의 차를 노래하면서도, 그 차를 다시 권력에서 떼어내어 한 인간의 고요한 정신과 사유의 세계로 되돌려 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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