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고문진보

*7강 백거이 비파행,장한가/두보 빈교행,병거행

벽암거사 2025. 12. 24. 17:35

1,琵琶行-白居易

潯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醉不成歡慘將別(취불성환참장별)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添酒回燈重開宴(첨주회등중개연)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轉軸撥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說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복조) 初爲霓裳後六么(초위예상후육요)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間關鶯語花底滑(간관앵어화저활) 幽咽泉流水下灘(유열천류수하탄)

水泉冷澁絃凝絶(수천냉삽현응절)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鐵騎突出刀鎗鳴(철기돌출도쟁명)

曲終抽撥當心畫(곡종추발당심화)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심양강 어귀에서 밤에 객을 전송하니

단풍잎과 억새꽃 가을바람에 소슬하네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객은 배에 있는데

술잔 들어 마시려 하나 음악이 없구나

취하여도 기쁘지 않고 슬프게 헤어지려 하니

이별하는 이때 아득한 강에는 달이 잠겨있네

문득 물가에서 비파소리 들려오니

주인은 돌아가는 것 잊고 객도 출발하지 않네

소리 찾아 타는 이가 누구인가 조용히 물어보니

비파 소리 멈추고 말하려다 머뭇거리네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만나보길 청하고

술을 더하고 등도 도로 밝혀 다시 술자리 연다

천번 만번 부르자 비로소 나오는데

비파를 안은 채 얼굴 반쯤 가렸네

축을 돌리고 줄을 퉁겨 두어 번 소리 내니

곡조를 이루기도 전에 먼저 정이 먼저 울어나네

줄마다 낮은 음 소리마다 그리움

평생의 불우한 뜻 하소연하는 듯하고

고개 숙이고 손가는 대로 연이어 타니

마음속의 끝없는 일들을 다 말하고 있다네

가볍게 눌러 천천히 비비며 아래위로 퉁기니

처음에는 예상(霓裳)이요 다음에는 육요(六么)라네

굵은 줄 두둥 울리니 소낙비 같고

가는 줄 절절하니 속삭임 같네

두둥거림과 절절함 섞어서 타니

큰 구슬과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네

꾀꼴꾀꼴 노랫소리 꽃 아래서 매끄럽게 흐르다가

 

얼음 아래 샘물이 목메어 흐느끼는 듯

얼음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현이 엉겨 끊어지니

끊겨 통하지 않음에 소리 잠시 멈추는데

따로 그윽한 시름 있어 남모르는 이 생겨나니

이때의 소리 없음이 소리 있는 것보다 낫다네

은병이 갑자기 깨져 담겼던 물 쏟아지듯

철기(鐵騎)가 돌진하여 칼과 창 울리는 듯

곡이 끝나자 채을 잡고 한가운데 그으니

네 줄을 한 번에 긋는 소리 비단을 찢는 듯하네

동쪽 배와 서쪽 배는 고요하여 말이 없고

오직 보이는 건 강속에 밝은 가을 달뿐

 

沈吟放撥揷絃中(침음방발삽현중) 整頓衣裳起斂容(정돈의상기염용)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家在蝦蟇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十三學得琵琶成(십삼학득비파성)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曲罷曾敎善才服(곡파증교선재복) 妝成每被秋娘妒(장성매피추랑투)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鈿頭銀蓖擊節碎(전두은비격절쇄) 血色羅裙飜酒汙(혈색나군번주오)

今年觀笑復明年(금년관소부명년) 秋月春風等閑度(추월춘풍등한도)

弟走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門前冷落鞍馬稀(문전랭락안마희)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繞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난간)

 

생각에 잠겨 발()을 놓아 줄 가운데 꽂고

옷깃을 여미고 일어나 모습 가다듬는다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 장안(長安)의 여자로

집이 하마릉(蝦蟆陵) 아래에 있어 그곳에 살았습니다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터득하고

이름이 교방(敎坊)의 제일부(第一部)에 올랐습니다

곡조 끝나면 선재(善才)들을 감복시켰고

단장을 마치면 추랑(秋娘)들의 질투를 받았지요

오릉(五陵)의 소년들 다투어 머리에 비단 감아주는데

한 곡조에 붉은 비단 셀 수 없었습니다

전두(鈿頭)와 은비녀는 장단 맞추다가 부서지고

핏빛 비단 치마는 술을 엎질러 얼룩졌지요

올해도 즐겁게 웃고 내년도 또 그렇게

가을 달과 봄바람 한가로이 보냈답니다

아우는 군에 가고 양어머니도 죽었으며

저녁 가고 아침 오자 얼굴빛도 시들었습니다

문앞이 쓸쓸해져 마차 가마도 드물어지니

나이 들어 시집가 장사꾼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장사꾼은 이익을 중시하고 이별은 가벼이 여겨

지난달 부량(浮梁)으로 차 사러 갔습니다

 

저는 강가를 오가면서 빈 배 지키는데

배를 둘러싼 달빛은 밝고 강물은 차가웠습니다

밤 깊자 홀연 젊었을 적 일을 꿈꾸니

꿈에서도 울어서 화장한 얼굴에 붉은 눈물 이리저리 흘렀답니다

 

 

**

비파행은 백거이가 좌천되어 강주(江州)로 가는 길목, 심양강 머리에서 겪은 한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시는 우연히 들려온 비파 소리를 통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결국 같은 상실의 자리에서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음악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이력을 불러내고 인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매개로 작용한다.

시의 시작은 쓸쓸한 이별 장면이다. 가을밤 강가에서 손님을 떠나보내는 장면은, 이미 이곳이 유배지로 향하는 길목임을 암시한다. 단풍잎과 갈대꽃, 강물에 잠긴 달빛은 정적인 자연 풍경이지만, 그 정적 속에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쓸쓸함이 깊이 배어 있다. 술은 있으나 관현악이 없는 이별의 밤, 흥은 나지 않고 슬픔만 더해진다.

이 고요를 깨는 것은 물 위에서 들려오는 비파 소리다. 처음에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연주자의 소리만이 밤을 가른다. 그런데 그 음조가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지방의 민간 음악이 아니라, 분명히 장안에서 유행하던 경도의 가락이다. 이 순간 시인은 직감한다. 이 비파를 타는 이는 한때 수도 장안의 화려한 세계에 몸담았던 사람일 것이라고.

비파 소리에 대한 묘사는 이 시의 정점이다. 굵은 줄과 가는 줄이 엇갈리고, 빗방울처럼 흩어지다가 은병이 깨지는 듯 폭발하며, 때로는 말이 막힌 듯 소리가 끊긴다. 이 모든 소리의 변화는 단순한 기교의 나열이 아니라, 연주자의 삶이 걸어온 굴곡을 그대로 닮아 있다. 특히 이때에 소리 없음이 소리 있는 것보다 낫다는 구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체념이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이 전달됨을 보여준다. 음악은 장식이 아니라 고백이며, 비파는 삶의 이력을 대신 말해주는 도구가 된다.

연주자는 결국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본래 장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기생이었다. 젊었을 때는 귀족과 명사들이 앞다투어 찾았고, 웃음과 노래로 밤을 지새우던 화려한 시절을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손님들의 발길은 끊겼고, 결국 돈 많은 상인의 아내가 되어 떠돌 듯 살아가게 된다. 사랑도 예술도 아닌, 생계를 위한 결혼이었다. 그녀의 삶은 개인적 불행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재능과 젊음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쉽게 소모되고 폐기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야기다.

이제 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백거이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그는 죄를 얻어 강주 사마로 좌천된 몸이다. 장안의 정치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이 순간 그는 깨닫는다. 비파를 타는 여인과 자신은 신분도 성별도 다르지만, “같은 천애의 떠돌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는 예술과 젊음을 잃었고, 그는 정치적 이상과 입지를 잃었다. 상실의 형태는 달라도, 상실의 무게는 같다.

이 깨달음이 비파행의 핵심이다. 여기서 연주자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고, 시인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다. 음악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은 교차하고, 타인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추어 본다. 공감은 동정이 아니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강주 사마의 푸른 적삼이 젖었다는 한 줄은 모든 것을 압축한다. 통곡도 없고 장황한 탄식도 없다. 그러나 젖은 옷자락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개인 백거이의 눈물이면서, 동시에 시대에서 밀려난 이들의 집단적 슬픔을 상징한다.

비파행은 음악을 빌려 인간의 운명을 드러내는 시다. 비파 소리는 장안의 영광과 강주의 유배를 잇는 다리이며, 한 여인의 인생과 한 시인의 좌절을 공명시키는 매개다.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시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이 겪는 상실과 유랑, 그리고 그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구조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파의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소리가 담아낸 삶의 애환은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다.

 

 

2,.長恨歌-白居易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 황제 중색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집안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알려지지 않으나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다네.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륙궁분대무안색)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춘한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매끄러운 온천물에 엉킨 때를 씻으니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어린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김보요)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불조조) 이를 좇는 군왕은 아침 조회를 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봄을 좇는 춘정에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金屋粧成嬌侍夜 (김옥장성교시야) 금옥을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렬사)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驪宮高處入靑雲 (려궁고처입청운)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선낙풍표처처문)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군왕은 온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漁陽瞽鼓動地來 (어양고고동지내) 어양 쪽 땅을 울리는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나고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항) 천승만기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항부지)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 백여리 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불발무나하)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 할 수 없어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미인의 긴 눈썹이 구부러지며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김작옥소두)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루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항)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밤비에 들리는 방울은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요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불능거)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말 높은 고래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불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 흔적도 없고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로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귀내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누수)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흘리리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섭낙시)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만계홍불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석전형비사초연)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을 알았네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냉상화중) 원앙같이 금슬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나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불증내입몽)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하늘로 오르고 땅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낙하황천)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량처망망개불견)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縹緲間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령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중유일인자옥진)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눈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扃 (금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람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주박은병이리개)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운계반편신수각)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부정하당내) 꽃장식관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구나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불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장차 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금합분전)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에든 인간세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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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절대적 사랑과 정치 질서의 이완

(총애의 탄생, ()가 권력을 압도하다)

개인적 사랑이 국가 질서를 잠식하는 순간, 이 단계는 양귀비의 입궁부터 황제의 전면적 총애가 확립되는 과정이다.

황제는 중색사경국(重色思傾國)”의 존재로, 이미 통치자로서의 균형을 잃고 있다. 양귀비의 미모는 단순한 개인적 매력이 아니라 제도 전체를 무력화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조회가 중단되고 후궁 삼천의 질서가 붕괴되며

황제의 시간은 정치가 아닌 사랑에 종속된다.

문제의 본질은 양귀비의 미색이 아니라,

황제가 사사로운 정()을 공적 책임 위에 둔 선택이다.

 

2단계: 사랑의 제도화와 권력의 사유화

사적 총애가 공적 권력으로 전이되는 위험

양귀비 개인에 대한 사랑은 곧 양씨 일문의 권력화로 이어진다.

자매제형개렬사(姉妹弟兄皆列士)” “불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

이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권력이 혈연·미색·총애에 의해 재분배되는 구조적 붕괴를 뜻한다.

 

황제가 직접 폭정을 행하지 않아도,

사랑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 불의가 될 수 있음을 시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3단계: 난의 폭발과 사랑의 비극적 청산

(마외파 사건, 사랑이 피로 대가를 치르다)

붕괴된 질서의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안록사의 난은 개인적 원한과 구조적 부패가 결합된 결과이며,

마외파에서 그 책임은 가장 약한 상징인 양귀비에게 전가된다.

군사들은 황제를 직접 처벌할 수 없고 제도는 스스로 책임질 수 없기에

사랑의 대상이 희생양이 된다.

군왕엄면구부득(君王掩面救不得)”

황제의 무능함이자, 사랑 앞에서조차 결단하지 못하는 통치자의 비극이다.

이 장면에서 백거이는 양귀비를 비난하지 않고, 권력자가 사랑을 방패로 삼았을 때의 잔혹한 귀결을 드러낸다.

 

4단계: 상실 이후의 영원한 한()

(사랑의 초월,그러나 책임은 남는다)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가, 책임 없는 사랑은 용서되는가

난이 끝난 뒤 황제는 통치자로 복귀하지만, 그의 시간은 오히려 멈춰버린 사랑 속에 갇힌다. 자연은 그대로인데(부용·버들)

궁궐은 존재하지만 사랑의 주체 양귀비는 없다.

선계(仙界)에서의 재회 장면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회복 불가능한 죄책감을 초월적 서사로 봉합하려는 시적 장치다.

 

천장지구유시진 / 차한면면무절기는사랑의 영원성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랑이 남긴 역사적 책임은 결코 소멸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장한가는 비극적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사적인 정이 공적 권력을 잠식할 때 발생하는 역사적 붕괴와 그 후에도 끝나지 않는 책임의 서사이다.=

 

*장한가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중색경민(重色輕民)**이라는 정치적·윤리적 문제를 인간의 감정 서사로 풀어낸 7언 장편 서사시로,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 재위 712~756) 치세의 흥망을 한 편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집약한 작품이다. 백거이는 이 시를 통해 제국의 몰락을 직접 고발하기보다, 한 황제의 사적인 애정이 어떻게 국정 전반을 잠식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감정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당 현종은 즉위 초반인 개원 연간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 개원성세(開元盛世)라 불릴 만큼 이상적인 통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재위 후반으로 갈수록 통치의 긴장은 풀리고, 황제 개인의 욕망이 국정 운영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740년경 양귀비와의 만남은 이러한 변화의 분수령이었다. 양귀비는 본래 현종의 아들 수왕 이모의 비였으나, 제도적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도교 여관으로 출가하여 태진(太眞)’이라는 이름을 받은 뒤 다시 궁으로 들어와 귀비가 된다.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는 명확한 사실이지만, 백거이는 시 속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신비화하여 사랑의 서사에 집중한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곧 궁정 전체를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고, 황제는 정사를 멀리한 채 향락에 몰두하게 된다. 이는 천보 연간의 난정(亂政), 즉 흔히 말하는 천보난치(天寶亂治)의 분위기와 맞물려, 중색경민의 폐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양귀비가 좋아하는 여지를 구하기 위해 역참을 달려 남방에서 급히 운반하게 하는 장면은, 황제의 사사로운 감정이 민생을 직접 압박하는 상징적 사례로 제시된다.

이러한 궁정 질서 속에서 변방의 유력한 절도사 안록사 역시 중심 무대로 끌려 들어온다. 그는 궁중에서 총애를 받는 듯 보였으나, 양귀비 앞에서 춤을 추는 존재로 소비되며 변방 장수로서의 자존과 정치적 신뢰를 훼손당한다. 이 경험은 양국충과의 갈등, 막강한 군사력과 결합되어 결국 반란의 심리적 토대가 된다. 7551226일 안록사가 반기를 들면서 당나라는 급속히 붕괴의 길로 들어서고, 이 혼란은 756217일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내전으로 확대된다.

반란 속에서 현종은 사천으로 피난하던 중 마외역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결정적 사건인 마외병변(馬嵬兵變)이 발생한다. 호위하던 금군과 신하들은 더 이상 진군을 거부하며 모든 화의 근원을 양귀비에게 돌리고 양귀비를 죽이라고 요구한다. 현종은 끝내 이를 막지 못하고 가장 사랑하던 이를 희생시킨다. 이 장면은 황제가 자신의 통치 실패를 한 개인에게 전가하는 순간이자, 사랑이 정치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지는 비극의 정점이다.

난이 진정된 뒤 장안으로 돌아온 현종은 폐허가 된 궁궐에서 깊은 상실과 회한 속에 살아간다. 꽃과 달, 계절의 변화는 모두 양귀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삶은 끝없는 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시의 후반부에서 방사를 통해 혼백을 찾는 장면과 비익조·연리지의 맹세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완결을 위한 상상적 장치로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초월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 작품은 백거이 개인의 창작에 그치지 않고, 그의 친구 왕질부, 그리고 산문 장한가전을 쓴 진홍과 함께 문학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진홍의 서사는 시에서 생략된 역사적 사실을 보완하며, 장한가를 감정과 사실이 결합된 종합적 서사로 완성시킨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선유산 일대에서의 문인 교유 속에서도 향유되며, 당대 지식인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결국 장한가는 한 황제의 사랑 이야기이자, 중색경민이 불러온 붕괴의 서정적 기록이다. 개인의 애정이 공적 질서를 넘어설 때 발생하는 비극을 말한다.

 

 

2.貧交行-杜甫

 

飜手作雲覆手雨(번수작운복수우)

粉粉輕薄何須數(분분경박하수수)

君不見管飽貧時交(군불견관포빈시교)

此道今人棄如土(차도금인기여토)

 

손을 뒤집어 구름 일고, 손을 엎어 비를 내리니

어지럽고 경박한 사람들을 어찌 다 헤아리리오.

그대는 못보았나,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한 시절 사귐을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도리를 흙먼지 같이 버리고 마는구나.

 

**

빈교행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은, 말과 감정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사람이 안정되고 여유로울 때는 관계가 넘쳐나지만, 정치적 탄압이나 사회적 낙인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인간관계는 손바닥 뒤집히듯 변한다. 두보가 말한 손을 뒤집으면 구름이 되고 엎으면 비가 된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위기 앞에서 인간의 태도가 얼마나 쉽게 달라지는지를 정확히 꿰뚫는다.

이를 현실의 사례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한 친구가 운동권 활동으로 인해 쫓겨 다니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평소 가깝다 말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등을 돌렸다. 연락을 끊고, 모른 척하며, 그와의 관계 자체를 부담으로 여겼다. 이는 두보가 말한 경박한 인간관계의 전형이다. 이해관계가 사라지거나 손해가 예상되자 관계는 즉시 정리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외면한 그 시기에, 한 사람은 달랐다. 그는 드러내놓고 돕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몰래 뒷돈을 대주었고,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의 생활까지 책임졌다. 이 행동은 명예도, 보답도,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계를 끊지 않았다. 이 사례는 두보가 말한 빈교’, 곧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사귐이 무엇인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두보가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굳이 가난한 시절의 사귐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우정은 상대가 도움이 될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함이 부담이 되는 순간에 증명된다. 운동권 친구를 돕는 일은 사회적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지만, 바로 그 점에서 그 관계는 계산을 넘어선 신뢰와 의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결국 빈교행이 전하는 인간관계의 통찰은 명확하다. 많은 사람이 떠나는 것은 인간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진짜 관계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과정이다. 모두가 외면할 때 남아 있는 한 사람, 그리고 손해를 알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는 선택 속에 진정한 우정이 존재한다. 두보의 시는 수많은 인맥보다, 위기의 순간에 끝까지 남는 한 사람의 가치를 묻고 있으며, 운동권 친구를 묵묵히 뒷바라지한 그 사례는 이 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3.兵車行-杜甫

車轔轔馬蕭蕭(차린린마소소) 行人弓箭名在腰(행인궁전각재요)

爺孃妻子走相送(야랑처자주상송) 塵埃不見咸陽橋(진애불견함양교)

牽衣頓足欄道哭(견의둔족난도곡) 哭聲直上千雲霄(곡성직상간운소)

道旁過者問行人(도방과자문행인) 行人但云點行頻(행인단운점행빈)

或從十五北防河(호종십오북방하) 便至四十西營田(변지사십서영전)

去時里正與裹頭(거시이정여과두) 歸來頭白還戊邊(귀래두백환수변)

邊延流血成海水(변정유혈성해수) 武皇開邊意未已(무황개변의미이)

<이하 생략>

 

수레는 덜컹덜컹 굴러가고 말들은 소소히 울어대는데,

길 떠나는 사람들마다 허리에 활과 화살을 차고 있구나.

늙은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이 앞다투어 따라나서 배웅하니,

먼지가 자욱하여 함양교가 보이지도 않는구나.

옷자락을 붙잡고 발을 구르며 길가에 주저앉아 우니,

그 울음소리가 곧장 하늘 끝까지 치솟는구나.

길가를 지나던 사람들이 물어본다, 어디로 가느냐고.

행인들은 그저 말하네, 부역과 징집이 잦아졌을 뿐이라고.

혹은 열다섯에 북쪽으로 황하를 지키러 나가,

마흔이 되어서야 서쪽 변방에서 둔전을 일군다 하네.

떠날 때는 마을 이장이 머리에 수건을 씌워 보내더니,

돌아올 때는 머리칼이 모두 세어 다시 변방으로 내몰리는구나.

변방의 들판에는 피가 흘러 바다를 이루었건만,

황제의 국경을 넓히려는 뜻은 아직도 끝이 없구나.

 

**

병거가 지나가는 소리는 언제나 크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 말이 울부짖는 소리, 사람의 숨이 엉키는 소리가 한꺼번에 길을 덮는다. 나는 길가에 서서 그 장면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말하기보다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전쟁은 늘 그렇게, 조용히 묻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병사로 끌려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결심도 용맹도 없었다. 그저 이미 떠나온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없다는 체념만 남아 있었다. 허리에 맨 활은 무거워 보였고, 발걸음은 그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그들을 붙잡고 우는 아내와 아이들은 먼지 속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눈물과 흙이 뒤섞이면, 이별은 늘 흐릿해진다. 그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있었지만,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묻는 이는 없었다. 북쪽에서는 또 군사가 필요하다고 하고, 서쪽에서는 땅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늘 그럴듯했지만, 떠나는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지는 못했다. 젊은 날 끌려갔던 이들이 백발이 되어 돌아오거나,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마을은 비어 있었다. 밭에는 쑥이 자라고, 집안일은 남겨진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힘센 여인이라 해도 쟁기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전쟁은 떠난 사람만이 아니라, 남은 사람의 삶까지 함께 끌고 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도 기뻐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아들은 언젠가 또 끌려갈 존재였고, 딸을 낳았을 때 오히려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세상은 이미 정상이라 부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