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고문진보

15강 捕蛇者說-柳宗元/

벽암거사 2026. 1. 13. 14:33

1.捕蛇者說-柳宗元

永州之野產異蛇

영주지야 산이사

영주 고을의 들판에는 이상한 뱀이 난다.

黑質而白章觸草木盡死

흑질이백장, 촉초목진사;

몸은 검고 흰 무늬가 있으며, 풀과 나무에 닿기만 해도 모두 죽는다.

以齧人無禦之者

이설인, 무어지자.

사람을 물면 막아낼 방법이 없다.

然得而腊之以為餌

연득이석지, 이위이,

그러나 이것을 잡아 말려 약재로 삼으면,

可以已大風攣踠

가이이대풍, 연완, , .

중풍과 경련, 종기와 악성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自是州之人皆賦捕蛇

자시 주지인, 개부포사,

이로부터 그 고을의 사람들은 모두 뱀을 잡는 부담(세금)을 지게 되었다.

當其租入時捕蛇者稀

당기조입시, 포사자 희,

세금을 거두는 시기가 되면 뱀을 잡는 사람은 드물었고,

而死者相藉也

이사자상자야.

죽는 사람은 서로 이어질 정도로 많았다.

 

余聞而悲之

여문이비지,

나는 이 말을 듣고 그것을 슬퍼하였다.

訪於捕蛇者問其故

방어포사자, 문기고.

그래서 뱀을 잡는 사람을 찾아가 그 까닭을 물었다.

 

:「吾祖死於是吾父死於是

: “오조사어시, 오부사어시.

그가 말하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 일로 죽었고, 아버지도 이 일로 죽었습니다.

今吾嗣為之十二年矣

금오사위지, 십이년의,

이제 제가 그 일을 이어받아 한 지가 열두 해가 되었습니다.

幾死者數矣

기사지수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言之貌若甚戚者

언지, 모약심척자.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빛은 몹시 슬퍼 보였다

 

余悲之且曰

여비지, 차왈:

나는 그를 가엾게 여겨, 또 말하였다.

若毒之乎余將告於官

약독지호? 여장고어관,

그 일이 그렇게까지 해롭단 말인가? 내가 관청에 아뢰어,

廢其賦爾其得復乎?」

폐기부, 이기득부호?”

그 세(뱀 잡는 부역)를 없애 주면, 너는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捕蛇者曰

포사자 왈:

뱀을 잡는 사람이 말하였다.

甚矣汝之不惠

심의, 여지불혜!

참으로 심하군요, 당신은 사정을 너무도 모르십니다!

向吾不為斯役則久已病矣

향오불위사역, 즉구이병의.

만일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래전에 이미 굶주리거나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自吾氏三世居是鄉

자오씨삼세거시향,

우리 집안은 삼대에 걸쳐 이 마을에 살아왔고,

積於今六十歲矣

적어금육십세의,

그 세월이 지금까지 쌓여 예순 해가 되었습니다.

而鄉鄰之生日蹙

이향린지생일축,

그러나 마을 이웃들의 살림은 날로 궁핍해지고,

殫其地之出竭其廬之入

탄기지지출, 갈기려지입,

땅에서 나는 소출은 모두 다하고, 집에서 얻는 수입도 모두 고갈되어,

號呼而轉徙

호호이전사,

울부짖으며 떠돌아 이주하고,

饑渴而頓踣

기갈이돈박,

굶주림과 갈증에 쓰러지며,

觸風雨犯寒暑

촉풍우, 범한서,

비바람을 맞고,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며,

呼噓毒癘

호허독려,

나쁜 기운과 전염병을 들이마셔,

往往而死者相藉也

왕왕이사자상자야.

죽는 사람이 자주 서로 이어질 정도였습니다.

 

曩與吾祖居者今其室十無一焉

낭여오조거자, 금기실십무일언;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집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與吾父居者今其室十無二三焉

여오부거자, 금기실십무이삼언;

우리 아버지와 함께 살던 이들 가운데도, 지금은 열에 두셋만 남아 있을 뿐이다.

與吾居十二年者今其室十無四五焉

여오기십이년자, 금기실십무사오언.

나와 함께 지난 열두 해를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도, 지금은 열에 넷이나 다섯만이 남아 있다.

 

非死則徙爾

비사즉사이,

죽지 않으면 떠날 뿐이었다.

而吾以捕蛇獨存

이오이포사독존.

그러나 나는 뱀을 잡는 일 덕분에 홀로 살아남았다.

悍吏之來吾鄉之人

한리지래, 오향지인,

포악한 관리가 마을에 오면, 마을 사람들은

聚而笑之若毒蛇之觸人

취이소지, 약독사지촉인;

마치 독사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하듯 모여서 비웃으며 피하였다.

而吾以捕蛇獨存

이오이포사독존.

그러나 나는 뱀을 잡는 사람이라서 혼자 살아남아 있었다.

悍吏之來吾鄉之人

한리지래, 오향지인,

포악한 관리가 마을에 오면, 우리 고을 사람들은

聚而哭之若毒蛇之觸人

취이곡지, 약독사지촉인.

마치 독사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하듯 모여 울며 공포에 떤다.

今吾生去死甚遠矣

금오생, 거사심원의,

지금 나는 살아 있어 죽음과는 매우 멀어졌다.

 

然吾嘗聞之

연오상문지,

그러나 나는 일찍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苛政猛於虎也

가정맹어호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사납다는 말이다.

故為之說

고위지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지어,

以俟夫觀人風者得焉

이사부관인풍자득언.

백성의 삶과 풍속을 살피는 사람들이 이를 통해 깨닫게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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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자설은 독사라는 자연의 공포를 통해 정치의 폭력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영주의 들판에 사는 독사는 사람을 물면 치명적이지만, 그 위험은 한정되어 있고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가혹한 정치는 제도의 이름으로 백성의 삶 전체를 압박하며, 피할 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백성은 독사를 잡는 위험한 일을 택한다. 이는 자연의 위협보다 정치의 폭력이 더 구조적이고 잔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유종원이 인용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苛政猛於虎)”라는 공자의 말은 현실의 증언이 된다.

이 문제의식은 조선 후기 정약용의 애절양에서 극단적인 장면으로 재현된다. 끝없이 부과되는 군포와 국가의 요구 앞에서 한 농민은 스스로 거세하고, 그의 아내는 잘려 나간 남편의 남근을 들고 관청에 나아가 항의한다. 이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제도가 인간을 파괴한 증거다. 독사보다 무서운 정치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성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점에서, 포사자설의 뱀 잡는 백성과 애절양의 농민은 같은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고려 말 정도전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진다. 정도전은 나주 유배 시절과 정치 활동 과정에서 고려 말의 부패가 단순한 일부 관리의 탐욕이 아니라, 국가 구조 자체가 백성을 수탈하도록 굳어져 있음을 보았다. 그는 더 이상 고려를 개혁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가 바로 새로운 국가의 창업 구상이었다. 이는 기존 질서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가혹한 정치 구조 자체를 해체하려는 급진적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정도전에게 새로운 왕조 건설은 권력 교체가 아니라, 백성이 독사보다 정치를 더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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