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고문진보

18-4.약계-장문잠(장뢰)

벽암거사 2026. 1. 16. 20:35

客有張子病者,積於其中者,飲而不能下,自外至者,揮而不得納。
(객유장자병자, 적어기중자, 음이불능하, 자외지자, 휘이부득납)
손님 중에 장자라는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속에 쌓인 것은 마셔도 내려가지 않고,
밖에서 들어오려는 것은 밀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從醫而問之,曰:「非不治。」
(종의이문지, 왈: 비부치)
의사를 찾아가 묻자 의사가 말하였다.
“치료하지 못할 병은 아닙니다.”

歸而飲藥,既飲而臥下,不終日而之矣,散而無餘。
(귀이음약, 기음이와하, 부종일이지의, 산이무여)
집에 돌아가 약을 마시고 누웠더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병이 사라져 흔적조차 없었다.

向之揮者,柔而不支;焦不數日,病復作,投以故藥,其效猶如初。
(향지휘자, 유이부지; 초불수일, 병부작, 투이고약, 기효유여초)
전에 막히던 것이 부드러워져 더는 막히지 않았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병이 다시 도졌고
예전 약을 쓰니 효과는 처음과 같았다.

自是不過月而病五作五下,每下輒愈。
(자시불과월이병오작오하, 매하첩유)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섯 번 병이 나고 다섯 번 나았는데,
낫는 데에는 매번 효과가 있었다.

然客(張子)之氣一語而三引,體不勞而汗,股不步而痺,膚無所耗於外而其中蕭然。
(연객지기 일어이삼인, 체불로이한, 고불보이비, 부무소모어외이기중소연)
그러나 장자의 기운은
말 한마디에도 숨을 세 번이나 고르고,
몸을 쓰지 않아도 땀이 나며,
걷지 않아도 다리가 저리고,
겉으로는 소모가 없는데 속은 텅 비어 있었다.

莫知其所以然。
(막지기소이연)
그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醫夫心病非不可已,子猶而之,氣未去也,蘊然然,獨何歟?
(의부심병비불가이, 자유이지, 기미거야, 온연연, 독하여)
의사가 말하였다.
“마음의 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러하니 기운이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것입니다.
속에 응어리가 남아 있으니 어찌 혼자만 그러하겠습니까?”

聞楚之南,有良醫焉,往而問之。
(문초지남, 유양의언, 왕이문지)
초나라 남쪽에 훌륭한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물었다.

醫曰:「子無數是然然者也。凡子之病,固是蘊然然也。」
(의왈: 자무수시연연자야. 범자지병, 고시온연연야)
의사가 말하였다.
“그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병은 본래 응어리진 기운 때문입니다.”

生!吾語女(汝)。天下之人,有甚快於予心者,其未必有傷。求無傷終者,則勿無生快吾心。
(생! 오어여. 천하지인, 유심쾌어여심자, 기미필유상. 구무상종자, 즉물무생쾌오심)
“들으시오.
세상 사람 가운데 나보다 더 통쾌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 해도
반드시 그것이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끝내 상처가 없기를 바란다면
마음의 기쁨을 아예 없애려 하지 마시오.”

夫陰氣積而陽氣衰,氣與血不運而為痞,橫乎子之胸者,其最甚矣。
(부음기적이양기쇠, 기여혈불운이위비, 횡호자지흉자, 기최심의)
음기가 쌓이고 양기가 쇠하면
기와 혈이 돌지 않아 병이 되는데,
그것이 가슴에 가로막혀 있으니 가장 심한 상태입니다.

氣不須頓而除其大累,和下之物,不能為也。必將導其痺而徐可。
(기불수돈이제기대루, 화하지물, 불능위야. 필장도기비이서가)
이 기운은 단번에 없앨 수 없고,
부드럽게 내리는 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막힌 것을 서서히 풀어야 합니다.

夫人之和氣,中然而溫,治乎其易處,則轉挫搖之功未成,而子之和氣無當已病矣。
(부인지화기, 중연이온, 치호기이처, 즉전좌요지공미성, 이자지화기무당이병의)
사람의 조화로운 기운은
중정하고 따뜻하여 다루기 쉬운 곳부터 치료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그대의 기운은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由是觀之,則子之病,子之和一偏矣。
(유시관지, 즉자지병, 자지화일편의)
이로 보건대
그대의 병은 조화가 한쪽으로 치우친 데에 있습니다.

不移而快其五藏,則子之和氣永不終矣。
(불이이쾌기오장, 즉자지화기영부종의)
이를 바로잡지 않고 오장을 자극하기만 하면
조화로운 기운은 끝내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子知之乎?
(자지지호)
그대는 이를 알고 있습니까?

客(張子)曰:「然。」
(객왈: 연)
장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燕居三月而後,子之氣歸焉也。
(연거삼월이후, 자지기귀언야)
그리하여 석 달 동안 조용히 지내자
장자의 기운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客(張子)復燕居三月,齊戒而後請之。醫曰:「子之氣,少復矣。」
(객부연거삼월, 재계이후청지. 의왈: 자지기, 소부의)
다시 석 달을 더 조용히 지낸 뒤 찾아가자
의사가 말하였다.
“그대의 기운이 조금 회복되었습니다.”

取藥而投之曰:「服之三月而病除矣,子三月而少康,終是年而復舊。且慎,不得速進。」
(취약이투지왈: 복지삼월이병제의, 자삼월이소강, 종시년이부구. 차신, 부득속진)
약을 주며 말하였다.
“석 달 복용하면 병이 없어지고,
다시 석 달이 지나면 조금 편안해지며,
이 해가 끝나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
다만 조심하십시오.
서두르지 마십시오.”

客(張子)瞿然而行其說。
(객(장자) 구연이행기설)
장자는 놀라며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然其初,使人藥療之,蓋三投藥而三反之也。
(연기초, 사인약료지, 개삼투약이삼반지야)
그러나 처음에는 사람을 시켜 약으로 치료했는데,
세 번 약을 써도 세 번 병이 되돌아왔다.

然日不見其所以之效,久較則月異而時不同,蓋終歲疾病。
(연일불견기소이지효, 구교즉월이이시부동, 개종세질병)
날마다 효과를 느끼지 못했고,
오래 지켜보니 달마다 다르고 때마다 달라
결국 한 해 내내 병을 앓았다.

客(張子)踞然,再拜而謝之,坐而問其故。
(객(장자) 거연, 재배이사지, 좌이문기고)
장자는 자리에 앉아 다시 절하고 감사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醫曰:「是醫(治)之過也。豈特子之病哉?」
(의왈: 시의(치)지과야. 기특자지병재)
의사가 말하였다.
“이것은 치료의 잘못입니다.
어찌 그대의 병만이겠습니까?”

子獨不見夫秦之治(民)乎?民悍而不聽令,悍而嗜敵,強而不撓,法令之不聽,治之不變,則秦之民,皆病矣。
(자독불견부진지치(민)호? 민한이불청령, 한이기적, 강이불요, 법령지불청, 치지불변, 즉진지민, 개병의)
“그대는 진나라의 다스림을 보지 못했습니까?
백성은 사납고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싸움을 즐기고 굽히지 않고,
법을 따르지 않는데도 정치가 바뀌지 않았으니
진나라 백성은 모두 병들어 있었습니다.”

醫以刑法,威以斷代,悍民動作猛暴,不實富彊,痛切勞勞。
(의이형법, 위이단대, 한민동작맹포, 불실부강, 통절로로)
형벌과 위엄으로 다스린 결과
백성의 행동은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했고,
참된 부강은 이루지 못한 채
고통과 피로만 깊어졌습니다.

痛切勞勞者,皆是手段之敗也。
(통절로로자, 개시수단지패야)
이 모든 고통은 다스리는 방법의 실패입니다.

秦之政如痺,攣拘阻塞,無故攻拒,而秦之病,當一快矣。
(진지정여비, 연구조색, 무고공거, 이진지병, 당일쾌의)
진나라의 정치는 마비와 같아
굳게 얽히고 막혀 이유 없는 공격과 거부만 일삼았으니
그 병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非學以治世,凡欲富強者,必先自治。
(비학이치세, 범욕부강자, 필선자치)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배움이 필요하며,
부강을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以己病而治人,則終身病矣。
(이기병이치인, 즉종신병의)
자신이 병든 채 남을 다스리면
평생 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積怨而不已,而秦之四肢股枯然,徒有其物而已。
(적원이불이, 이진지사지고고연, 도유기물이이)
원한을 쌓아 멈추지 않으니
진나라의 사지와 팔다리는 말라버렸고
겉모양만 남았습니다.

民心已離而血氣涸竭。
(민심이리이혈기고갈)
백성의 마음은 떠났고
기혈은 말라버렸습니다.

故曰:政如夫火呀,不終日而百病皆起。
(고왈: 정치부화아, 부종일이백병개기)
그래서 말합니다.
정치는 불과 같아
하루도 못 되어 온갖 병이 일어납니다.

秦欲速其手足肩膊,而病愈甚不旋踵。
(진욕속기수족견박, 이병유심불선종)
진나라는 손발과 어깨를 빨리 움직이려 했으나
병은 오히려 더 심해져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故秦之亡者,是好爲快者之過也。
(고진지망자, 시호위쾌자지과야)
진나라가 망한 것은
쾌속만을 즐긴 자들의 잘못이었습니다.

昔者,先王之民,其初亦嘗勞矣。
(석자, 선왕지민, 기초역상로의)
옛 성왕의 시대에도
백성은 처음에는 수고로웠습니다.

先王豈不知眾聲之以爲速也?惟其慮於終也。
(선왕기부지중성지이위속야? 유기려어종야)
성왕이 빠름이 좋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다만 끝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故不敢求快於吾心,優柔而撫其民,教以仁義,導以禮樂,陰導其氣而去其病。
(고불감구쾌어오심, 우유이무기민, 교이인의, 도이예악, 음도기기이거기병)
그래서 자기 마음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부드럽게 백성을 어루만지며
인의로 가르치고 예악으로 이끌어
보이지 않게 기운을 인도해 병을 없앴습니다.

使其悠然而趨於平安而不自知。
(사기유연이추어평안이부자지)
백성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평안으로 나아갔습니다.

方其未也,旁觀而歎然者,有之。然肘之酸痛之前,非今之俗也。
(방기미야, 방관이탄연자, 유지. 연주지산통지전, 비금지속야)
아직 그러지 못했을 때
곁에서 탄식하는 이도 있었으나,
팔꿈치가 쑤시기 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폐단이 아니었습니다.

不躁不擾,無所逆,是以去其疾,而不傷其氣。
(부조부요, 무소역, 시이거기질, 이부상기기)
조급하지도 어지럽히지도 않으니
병은 제거되되 기운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於是政成教達,安樂悠久,而無後患矣。
(어시정성교달, 안락유구, 이무후환의)
이에 정치가 이루어지고 교화가 통하여
평안과 즐거움이 오래 지속되었고
뒷근심이 없었습니다.

是以三代治,皆如是。
(시이삼대치, 개여시)
이 때문에 삼대의 정치는 모두 이와 같았습니다.

堯舜之人,歷數百年而後俗成,則子之藥,終年而愈疾者,蓋無足怪也。
(요순지인, 역수백년이후속성, 즉자지약, 종년이유질자, 개무족괴야)
요·순 같은 성인은 수백 년을 거쳐 풍속을 이루었으니,
그대의 약이 한 해 만에 병을 고친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故曰:天下之病,有甚於快者,其末也。
(고왈: 천하지병, 유심어쾌자, 기말야)
그러므로 말합니다.
천하의 병 가운데
‘빠름을 탐함’보다 심한 것은 없습니다.

必有傷,求無傷於其終,則勿無望於快吾心。
(필유상, 구무상어기종, 즉물무망어쾌오심)
반드시 상처가 생기니,
끝에 상처가 없기를 바란다면
마음의 쾌락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客(張子)再拜而出而其說。
(객(장자) 재배이출이기설)
장자는 다시 절하고 물러나
그 가르침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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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병을 다루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장문잠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질병을 넘어 인간과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하는 사유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글 속의 병은 단순한 육체적 이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누적된 과도함과 조급함, 그리고 억지로 바로잡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삶의 병이다. 약을 써도 낫지 않고, 억지로 움직이면 더 악화되며, 쉬게 해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문제의 근원이 이미 몸을 넘어 기와 마음, 더 나아가 삶의 방식 자체에 있음을 드러낸다.

 

장문잠은 여기서 치료의 실패를 기술의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너무 급하게 고치려 드는 태도’가 병을 깊게 만든다고 본다. 위기를 마주할수록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처방에 매달리고,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의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거듭 쓰는 행위는,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계속 덧붙이는 정치와 닮아 있다. 겉으로는 질서를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러운 회복력을 소진시키고 피로를 누적시킬 뿐이다.

 

이 지점에서 글은 ‘위생’과 ‘양생’을 대비시킨다. 위생은 급박한 상황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기준이 될 때 사람은 끊임없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더 깨끗하게, 더 안전하게, 더 빨리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조급한 태도는 단기적 안정은 줄 수 있어도, 장기적인 건강과 생명력은 오히려 약화시킨다. 장문잠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급한 나머지의 급한 처방이다.

 

이에 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양생의 관점이다. 양생은 병을 즉시 제거하려는 기술이 아니라, 생명이 스스로 조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르는 태도이다.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개입을 멈추며, 자연의 리듬을 신뢰할 때 비로소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이 아니라,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절제의 지혜이며, 속도보다 지속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즉각적인 제도와 규율로 대응하는 사회는 위생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사람들의 숨 쉴 여백과 자생적 질서를 잃기 쉽다. 반대로 느긋해 보일지라도 과도한 개입을 삼가고 회복의 시간을 허락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안정에 이른다. 장문잠에게 다스림이란 무엇을 더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멈출 것인가를 분별하는 문제이다.

 

결국 이 글은 조급함이 지배하는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물러서서 보라고 말한다. 위기를 맞을수록 더 강한 처방과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경계하며, 그 대신 양생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사람도 사회도 지나치게 고치려 들 때 가장 깊이 병들며, 진정한 회복은 덜함과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글은 오늘날 속도와 효율에 매인 현대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성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