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논어 교실

공자의 제자들1

벽암거사 2025. 7. 14. 08:26

공자의 제자들

 

 

공자의 제자들

 

구분 이름 () 출신나라 공자와
나이차
관직
덕행 안회顔回 자연子淵 -30
민손閔損 자건子騫 -15
염경冉耕 백우伯牛 -7
염옹冉雍 중궁仲弓 -29 계씨재
정사 염구冉求 자유子有 -29 계씨재
중유仲由 자로子路 -9 계씨재
전손사顓孫師 자장子張 -48
언어 재여宰予 자아子我 -29 임치대부
단목사端木賜 자공子貢 -31 신양재
문학 언언言偃 자유子游 -45 무성재
복상卜商 자하子夏 -44 거보재
기타 번수樊須 자지子遲 -36
유약有若 자유子有 -43
증삼曾參 자여子輿 -46

 

 

 

 

 

 

공문사과

 

공자가 제자를 평하여 수업을 받고 자신을 닦아 통달한 자가 77명에 달하는데 모두 특이한 재능을 가진 제자들이다. 덕행으로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고 정사에는 염유와 자로가, 언어(수사설변)에는 재아와 자공이, 문학(옛 문헌)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공문사과다. 10대 제자라고 하지만 실제 능력이나 공덕 면에서 이들보다 출중한 제자들이 많았다.

공문사과

















먼저 덕행에 능한 제자들이다.

안연 덕행에는 단연 안연顔淵을 꼽는다. 이름은 회이고 자가 연이다. 안연은 공자보다 서른 살 아래로 공자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가 공자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것은 품성과 호학의 열정도 있지만 어머니 안징재와 같은 집안이라는 점도 일부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논어를 읽어보면 자공이 안회보다 능력과 품성 면에서 별로 뒤지지 않는데 질책도 당하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를 받았다.

공자가 평소 안회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말도 잘 못하고 바보 같았다. 그의 진면목을 알고 싶어 가정방문을 했는데 배운 내용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안회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제자라는 사실을. 겉모습과 본질이 모두 빛나니 군자의 모습이다. 안회는 참으로 가난했다. 누추한 동네에 살면서 그의 밥상은 대나무 그릇에 밥 한 주먹, 찬물 한 바가지가 전부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겠지만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다.

 

어질도다, 회여! 거친 밥과 한 표주박의 물, 누추한 집, 사람들이 그 시름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려 들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 <옹야편6-11>

 

공자는 애제자의 장래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기가 잘 한 것에 자랑하지 않고 살겠다.”는 평범한 꿈을 말한다.

안회는 물질적 가치에 비중을 두지 않고 학문적 성취에 삶의 지향점을 두고 살았던 제자다. 거친 밥에 국 한 그릇 없이 맹물을 마시고 베개 살 돈이 없어 팔을 구부려 잠을 청할지라도 자기가 지향하는 지적인 호기심을 찾아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었다.

안빈낙도에서 안빈安貧이란 가난에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물질적 가치에 삶의 비중을 낮추라는 뜻이다. 낙도樂道는 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자신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가치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가난을 힘으로 극복하되 안 되면 그저 받아들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즐거움을 찾으라는 의미다.

필자는 안빈낙도의 해석을 내 생활과 접목시키곤 한다. 20104월에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그 당시 나는 16년 된 차를 타고 다녔다. 차는 시세로 50만원인데 마라톤 대회 참가하기 위해서 단 1주일의 경비가 약 400만 원 정도 들었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돈 많은가 보네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상식과 기준으로 말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자동차는 그냥 이동수단이지 더 이상 삶의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마라토너로서 보스톤 마라톤대회 출전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나의 꿈을 실현하는 가치로 여겼다. 안연은 밥 먹고 잠자는 것은 인간의 허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하는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았고 자신이 지향하는 도를 실현하기위해서 꾸준히 배우고 정진했다.

공자는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하여 나아가는 것만 보았지 멈춰 서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노나라 애공이 묻는다. “제자 가운데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누가 있느냐. 공자는 안회라는 자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지금은 죽고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아마 그때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관리로 발탁되어 자신이 추구하고자한 이상세계를 실현할 기회를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품성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화가 나더라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삭이는 사나이. 보통사람들은 잘잘못이 있으면 따져서 네 탓, 내 탓 할 텐데 안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마나 철두철미하기에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는 저지르지 않았을까. 이 말을 볼 때 장자<산목편>에 나오는 빈 배이야기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저 쪽에서 배 한 척이 다가와 접촉사고를 냈다. 순간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저 쪽 배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면 에이! 내가 노를 잘못 저었구나!”하며 스스로를 탓하고 분을 삭인다. 반면에 저 쪽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왜 노를 잘 못 저어 부딪혔느냐고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려한다. 안회는 이미 장자의 빈 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잘못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은 것은 공자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잘못이다.’<위령공편15-30>는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덕이 없는 자는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꾸며서 얼버무리려 한다는 가르침의 연장선상이다. 이렇게도 입에 침이 마르게 제자를 칭찬하고 있는데 과연 안회는 스승 공자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안연이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고 뚫고 내려가면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며, 앞에 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뒤로 가 계신다. 선생님은 사람을 차분하게 잘 이끌어 내 학문의 폭을 넓혀주시고 예로써 가르쳐 주시니 그만두려 해도 그만 둘 수가 없다. 따라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목표물이 우뚝 솟아 있다따라잡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자한편9-11>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있다. 학문의 심취도는 더욱 높고 행동반경은 자로 잰 듯 반듯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갈고 닦아 학문적 수준이 근접했다고 안도하려는 순간 어느새 저만치 달려 나가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극찬이다.

나름 학문적 성취를 이뤘다고 판단한 안회가 선생님께서는 늘 인을 강조하는데 인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묻는다. 평소 말이 없고 묵묵히 실천하던 안회가 인을 물었을 때 공자는 순간 긴장했을 것이다. 차분하게 정리하며 말한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위하는 것이다.” 자기의 이기심, 욕심을 접고, 자신의 몸을 단속하여 나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향한 온갖 욕심이나 욕정 같은 것을 극복함으로서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이 극기이다. 상대를 획일적으로 대하지 않고 차별성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대우하여 상대를 주인공으로 받아들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복례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양파 한 뿌리이야기를 보자.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선행을 베푼 적이 없다. 지옥으로 떨어졌다. 수호천사는 연민의 정이 발동하여 구원해 주기로 했다. 일생에 착한 일이라고는 거지에게 양파 한 뿌리 준 게 전부였다. 이걸 빌미로 지옥에서 양파 뿌리를 잡고 올라오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때 여기저기서 할머니의 몸을 붙들자 내 양파야!” 라고 걷어차면서 양파뿌리는 끊어지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욕망을 혼자만 차지하고자 할머니는 구원(신의 은총) 대신에 증오를 선택했다. 할머니가 욕망과 증오를 벗어나는 길은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단절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모든 것이 풀리기 마련이다. 문제의 발단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생기고 싸움이 시작된다. 내 생각대로 하지 않고 남도 나와 같이 중요한 존재임을 알고 그도 나와 같이 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을 위하는 길이다.

안회는 스승의 가르침을 철두철미하게 실천하여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득도하여 더 이상 추구할 가치가 없었던 것인가? 앉아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좌망坐忘의 단계에 이르러서 인지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며 대성통곡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선생님 슬퍼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지적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실제 공자는 자식이나 친구의 죽음보다도 애제자인 안회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

이를 알고 있던 안회의 아버지가 장례를 성대히 치르고자 공자의 수레를 요구하였다. 보통사람은 죽으면 관으로 매장하는데 좀 더 성대한 장례를 위해 바깥에 곽을 하나 더 붙이고 싶었던 것이다. 공자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신의 아들 리(백어)가 죽었을 때도 관으로 장례를 치뤘다. 퇴직한 관료이고 지금은 힘이 없다지만 걸어 다닐 수는 없으니 수레로 곽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자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수레가 아깝다기보다는 자기 신념의 표현이. 상례는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목적에 맞는 행동이면 된다. 장례식장에 반바지와 슬리퍼차림이나 빨간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메고 조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통념이다. 장례식장 들어가서 술 한 잔 거나하게 마시고 조문 온 동료의 엉덩이나 만지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안회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물질적인 이익보다는 학문적 성취와 이상세계를 위한 가치에 치중하여 위정자로서 삶보다는 인과 덕의 수행자로서 그만의 인생을 살다가 갔다.

 

민자건 이름이 손이고 자가 자건子騫이다. 이름이 덜다, 모자라다는 덜 손이고, 자에 붙은 건은 허물이 있다는 뜻으로 그는 장애인이었다. 공자보다는 열다섯 살 아래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효자였다.

어느 겨울 날, 아버지가 우들우들 떨고 있는 자건을 보았다. 아들 외투를 확인했더니 속에 나뭇잎을, 계모의 자식은 솜털을 보온재로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순간 화를 내며 계모를 쫓아내려 했다. 자건은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계모를 쫓아내면 세 사람이 추위에 떨지만 계모가 있으면 한 사람만 추위에 떨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계모는 반성하여 자건에게도 친자식처럼 대했다고 한다.

그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고 자기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노나라 권력자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의 읍장으로 임명하려고 사신을 보냈지만 거절한 전력이 있다.

 

계손씨가 민자건을 비의 읍장으로 임명하려하자, 민자건이 말했다. “나를 위해서 잘 사양해 주세요. 만약 다시 나를 찾는 일이 있다면 분명히 문수에 가 있을 것입니다.” <옹야편6-7>

 

문수는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넘어가는 국경지대의 강이다. 읍장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벼슬자리를 다시 요청하면 이웃나라로 넘어가겠다며 강하게 거절하고 있다. 민자건은 벼슬자리에 나가는 것보다 묵묵히 덕을 쌓으며 학문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3손씨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노나라의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어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군주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전횡을 일삼는 계씨 밑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장자>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당대의 스승임을 알아본 초나라 위왕은 사람을 보내 재상자리를 제안한다. 장자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사람을 등 뒤에 둔 채 왕실에는 3천 년 묵은 죽은 거북을 비단 상자에 넣어 제단 위에 간직하고 있다더군요. 당신은 죽어서 그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뼈가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을 활보하는 거북을 원했겠소?”라고 말했다. “그야 물론 살아서 진흙 속을 다니는 거북을 원했겠지요.” “그렇다면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사는 거북이가 될 터이니라고 했다. 재상자리에 앉아 구속받기 보다는 가난하더라도 속 편히 사는 거북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민자건은 위정자들이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하면 과감하게 일갈하곤 했다.

 

노나라 사람이 장부(창고)를 새로 짓자 민자건이 말했다. “옛것을 그대로 쓰면 어떤가? 왜 꼭 다시 지어야 하는가?” 이를 듣고 공자가 말했다. “그 사람(민자건)은 말을 잘하지 않지만 말을 하면 이치에 맞는다.” <선진편11-13>

 

교체 수명이 다하지 않은데도 권력자가 마음대로 건물을 신축하자 이는 백성의 세금을 거둬서 하는 일이니 예산낭비라고 보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식 행정을 지적한 것이다.

 

염백우 이름이 경이고 자가 백우伯牛라 염경 또는 염백우冉伯牛라 불렀다. 공자는 젊은 나이에 문둥병에 걸려있는 제자를 찾아가서 남쪽으로 난 창문너머로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를 망쳤구나, 숙명이로다!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옹야편6-10>라고. 예수 같으면 초능력을 발휘하여 병을 낫게 해 줄 터인데, 그저 눈물짓고 슬퍼만 하고 있다. 실천적 사랑만 있는 것이지 비현실적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유학이고 공자의 모습이다. 요절했기에 그의 기록은 논어의 이 구절 외에는 없다. 덕행이 뛰어난 제자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중궁 그는 천민 출신이다. 성은 염이름은 옹 하여 염옹이고 자가 중궁仲弓이며 공자보다 스물아홉 살 아래다. 공자가 중궁을 극찬하고 있다.

 

중궁은 가히 남면할 수 있다.”<옹야편6-1>

 

지난여름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조천읍에 있는 연북정에 들렀다. 누각은 그릴 연 북녘 북하여 연북정이다. 제주도로 유배 된 선비가 언젠가는 임금이 자신을 불러줄까 노심초사하면서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님의 안부와 건강을 걱정하며 바라보았던 곳이다.

남면南面이라는 것은 의자를 남쪽으로 향해 앉아 있다는 뜻이다. 신하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니까 군주를 의미한다. 옛날 순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각 기능별 참모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무위無爲의 치를 했다고 한다. 순임금은 남쪽으로 향해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시스템에 의해서 나라가 자율적으로 돌아가니 왕이 굳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었다. 군주는 남쪽을 바라보고 신하는 북쪽을 향해서 앉는다.

중궁이 출신성분 때문에 학문을 배우고 익혀도 벼슬길에 나갈 기회를 갖지 못할까 걱정하자 공자는 얼룩소에 비유하며 학문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다.

 

얼룩소의 새끼라 해도 털빛이 붉고 뿔이 가지런하면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비록 제물을 쓰려하지 않아도 산과 강의 신들이 가만히 두겠느냐”<옹야편6-4>

 

얼룩소는 중궁의 부모이고, 털빛이 붉고 뿔이 가지런한 새끼소는 중궁을 말한다. 출신이 비록 미천하지만 너의 출중한 능력은 주위에서 인정받아 발탁될 것이라는 암시다. 미천한 신분에 능력의 소유자. 주변에서 시샘도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염옹은 어질지만 말은 잘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공자는 주위의 폄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늘어놓는다.

 

어떤 사람이 (중궁)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말 잘하는 것은 어디에 쓰겠는가. 말 잘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부리면 자주 원망을 듣는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지만 말 잘하는 것은 어디에 쓰겠느냐.” <공야장5-5>

 

공자는 말만 번지러하게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재여처럼 낮잠만 자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자를 싫어했다. 묵묵히 배운 바를 실천한 안연과 말을 잘 하지 않다가 꼭 필요한 말만 했던 민자건 같은 제자를 좋아했다. 그래서 교묘하게 꾸민 말과 반질한 얼굴-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하는 사람은 인한 자가 드물고, 강직하고 의연하며 질박하고 말이 어눌한-강의목눌剛毅木訥-사람은 인에 가깝다고 했다. 사람의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는 폼이 아니고 속으로 품어주는 품이며, 이리저리 뜯어 붙인 성형이 아니라 본래 모습이 드러난 상형에 있다.

묵직하게 말을 가려서 했던 중궁이 계씨의 가신으로 추천받고 임지로 가기 전에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한다.

 

하급관리보다 솔선수범하고 작은 잘못은 용서하고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발탁해라.” 중궁이 다시 묻는다.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어떻게 발탁합니까?” 공자가 말한다. “네가 알고 있는 사람을 발탁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버려두겠느냐.” <자로편13-2>

 

정사를 하면서 솔선수범과 너그럽게 포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인재를 등용하는데 혈연, 지연, 학연의 문제를 초월한 오직 능력과 인성을 고려한 발탁을 주문한 것이다. 궁금증을 해소한 중궁은 다른 사람과 빗대어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묻는다.

 

자상백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괜찮다. 아주 소박하지.” 다시 묻는다. “평소 경건하되 소박하게 행동하면서 백성에게 임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평소에도 간소하고 행동할 때에도 간소하게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옹의 말이 맞다” <옹야편6-2>   


  에 너무 집착하면 숨통 조이는 일이다. 즐거움이 지나치면 방탕하게 되니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사는 것이 군자의 모습이다. 중궁은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여 군자를 지향했고 나름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도 여지없이 인에 대해서 묻는다.

공자가 말한다.

 

대문을 나서면 큰 손님 맞이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 지내듯이 하라. 자기가 원하지 않은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마라. 그렇게 하면 나라에서 일을 할 때도 원망이 없고 대부의 식읍에서 일을 해도 원망이 없다.” <안연편 12-2>

 

대문을 나선다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하여 사회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성을 부린다는 것은 벼슬길에 나선 것이다. 이 때 큰제사를 모시듯 하라는 의미는 순차적인 질서에 맞춰서 예를 갖추고 행동해야 한다. 네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가르침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의미다.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정(?)도 이 범주에 볼 수 있다. 자식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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