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어디가고
두 사내가 주차장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한 사내는 중년의 신사이고 또 한 사내는 20대 후반의 청년입니다. 내용인즉, 중년의 신사가 도서관에서 볼일을 보고 나가려고 하는데 자신의 차 뒤에 청년의 차가 주차되어 차를 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년의 신사가 이리저리 연락하여 차주를 확인하는데 족히 30분을 허비 했습니다.
그 청년이 나타나자 “이봐요 당신 때문에…” 언성을 높이며 벌컥 화를 냅니다. 이에 질세라 청년도 “이봐 라니…”하며 고분고분 하지 않습니다. 실랑이의 단초는 주차문제인데 언성이 높아지고 하는 부분은 왜 반말을 하고 화를 내느냐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상대방의 태도를 문제 삼은 거지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아십니까.
한 무리의 인간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하 동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동굴의 한 가운데서 묶여 있어서 머리조차도 옆으로 돌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있는 동굴 벽이 전부였습니다. 동굴에서 유일한 빛은 그들의 등 뒤에 불타고 있는 횃불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물들이 등 뒤에 횃불사이로 운반되었고 사물들의 그림자가 건너편 벽에 남겨졌습니다. 눈을 뜨면 건너편 벽에 비추어진 사물들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물을 운반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마치 그림자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등 뒤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였고 그림자를 진실의 세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동굴 속에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동료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의 밖에 있어서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굴의 사정을 깨달은 자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그를 ‘타락한 눈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자’라고 경계하고 자신들을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자는 모두 죽이는 것이 화를 면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세상밖에 있는데 그들의 세계는 동굴이 전부인 것이지요. 마치 밤하늘의 별에 관해서 논의를 하는데 별을 보지 않고 방안에서 별에 대해서 가타부타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질은 문 밖으로 나오면 하늘에 별이 있는데 별은 보지 않고 방안에서 자기의 주장만 강변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전등불 아래에서 별을 논하고 있으니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주차를 제대로 했느냐 연락처를 남겨두지 않았느냐하는 문제는 논외로 되어버렸고 반말과 욕설로 싸우는 모습은 별이 보이는 현장을 버리고 방안의 전등불 아래에서 별을 논하는 현상과 무엇이 다릅니까? 세상살이가 각박해서 아니면 자기편의위주의 생각이 고착되어서일까? 본질은 어디가고 본질 아닌 것이 본질 행세를 하고,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 가득한 진실은 동굴의 어두운 세계가 아니고 빛의 밝은 외부세계인데 본질 아닌 것이 현실이 된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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