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수필

때로는 핑계도 필요하다

벽암거사 2025. 7. 14. 08:35

때로는 핑계도 필요하다.

 

살다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나 순간을 모면하거나, 감추고자하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둘러대기도 합니다.

속내를 알아챈 누군가가 핑계 대지마라고 핀잔을 줍니다.

 

반면 필요에 따라 적당한 핑계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현들의 사례도 있습니다.

논어 양화 편에 보면 유비라는 사람이 노나라 애공의 명으로 장례절차에 대해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만나 뵙고자 하지만 평소 유비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라 병이 있다는 전갈뿐입니다. 잠시 후 그가 발길을 돌리는 뒤통수에 대고 비파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만나기 싫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맹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맹자 공손추 하 편에 보면

맹자장조왕 왕사인래왈 과인 여취견자야 유한질 불가이풍 조장시조 불식 가사과인득견호 대왈 불행이유질 불능조조孟子將朝王 王使人來曰 寡人 如就見者也 有寒疾 不可以風 朝將視朝 不識 可使寡人得見乎對曰 不幸而有疾 不能造朝

-맹자가 조정에 나가 왕을 뵈려고 하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과인이 뵈려고 하였는데 감기가 들어서 바람을 쐴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장차 조회를 볼 것이니 알 수 없지만 과인으로 하여금 뵐 수 있겠습니까?”하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불행히도 병이 있어서 조정에 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으로서의 도리보다는 스승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접견을 거부합니다.

삼국지에도 유사하게 핑계를 들이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국새를 손에 쥐게 된 손견이 국새만 간직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직속상관인 원소에게 질병을 핑계로 수하를 떠나려고 하자 사실을 알아차린 원소는 그 병이 꾀병이라고 호통을 칩니다.

위의 예처럼 직설적으로 병을 빙자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을 피하는 방법도 있지만 은유적으로 핑계를 들이미는 사례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높은 학문을 묵히지 말고 조정에 나와 올바른 정사를 펼쳐 백성을 돌볼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퇴계의 제안에 남명은 동이를 뒤집어 쓴 것 같이 역량도 없고 식견이 없을 뿐 아니라 눈이 침침하니 발운산撥雲散-눈을 뜨게 해주는 안약-이나 구해 달라고 주문하며 조정에 나갈 의사가 없음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퇴계 또한 만만찮게 답신을 보내지요. “발운산을 구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도 당귀當歸-마땅히 돌아간다. 벼슬길에서 하직하고자 함-를 구하고 있다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순간에 상황을 모면하거나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는 적당한 핑계도 삶의 한 방식입니다.

극복하고 싶은 순간을 솔직함과 반성으로 이겨내는 방법이 정석이라면 때로는 적당한 변명으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고 내면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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