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문제
도道란 설문해자에서 ‘사람이 다니는 길을 뜻한다. 자부는 착辵(辶)과 수首로 이루어진 회의자다. 완전히 통하여 옆길이 없음’을 말한다. 한자로 풀면 ‘彳+足+首’의 조합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쳐들어온 이민족의 목首을 베어 땅에 묻어足 정화된 길彳’이다. 사전에는 ‘사람다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풀이한다.
공자가 고민하는 도란 무엇일까? 태초에 신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신은 만물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였으니 명령은 천명이며 인간이 구원받고 기댈 곳은 신이었다. 인간은 신이 계시하는 대로 살면 그 뿐. 절대자인 신의 명령을 거역하면 천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반기를 든 지도가가 나타났다.
①초나라 소왕이 병이 나 점을 봤더니 ‘황하의 신이 병의 빌미다.’ 라는 점괘가 나왔다. 대부들이 교외에 가서 제를 올리자고 청했다. 소왕이 말했다. “옛날 하, 상, 주나라의 예법을 따르면 제후는 봉토 밖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낼 수 없소. 장강, 한수, 수수, 장수는 우리 초나라의 봉토 안에 있소. 재앙이나 복은 모두 이 강에서 나오는 것이오. 내가 비록 부덕하지만 황하의 신에게 죄를 지은 적은 없소.” 말하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②붉은 까마귀 같은 구름이 태양을 끼고 비상하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소왕이 주황실로 사람을 보내 태사에게 물었다. 답하기를 “화가 장차 소왕에 미칠 것이오. 재앙을 물리치는 제사를 지내면 그 재앙이 영윤이나 사마에게 옮길 수 있을 것이오.” 말을 전해들은 소왕이 “내 몸과 마음의 병을 없앤다고 그 병을 신하에게 옮겨 놓은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죄가 있다면 내가 벌을 받아야지 그 화를 누구에게 옮긴단 말인가.” 말하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공자가 말했다. “초나라 소왕은 큰 도를 알고 있다. 오나라의 침공에도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춘추좌전 노애공6년>
초나라 소왕은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 전제군주의 나라에서 군주가 신하를 걱정하고 있다. 확신에 찬 신념과 의연한 태도. 병과 재앙을 물리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 자리에서 덕을 쌓고 정성을 다하면 그 뿐. 평소에 노력하지 않고 제사를 지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이 재앙을 물리친다. 사람중심의 사고를 하는 소왕은 지도자로서 도를 알고 있었다. 공자는 천도天道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공야장5-13> 공자의 도란 초월적 존재로부터 부여 받은 인간이 구체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 -인도人道-이다. 사람이 노력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요행이나 운수를 바라지 않는 정의롭고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도라고 보았다.
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선진편11-11>
귀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묻고 있다. 공자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귀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람이 스스로 노력해서 주어진 일을 다 하고 결과에 수긍하면 된다. 사람의 문제지 귀신에 의존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공자가 고민한 대상은 인간이고, 시기는 미래의 부활이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두었다. 시간적으로는 지금 공간적으로는 여기에서 삶에 한정했다.
공자가 살았던 기원전 5~6세기. 철기의 보급은 세상을 바꿔 놓았다. 삶의 기반인 농사와 전쟁의 형태가 바뀌었다. 농사는 쟁기와 곡갱이 등 농기구가 등장했다. 소와 쟁기를 이용하는 심경深耕농업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씨족중심에서 가족공동체로 바뀌었다. 치수사업으로 제방을 쌓고 강의 물줄기를 조절하여 강가의 습지는 광활한 경작지로 변했다. 홍수를 예방하고 농업용수도 자유자재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맹목적으로 신을 믿기보다는 인간이 노력하면 대규모 홍수 같은 재앙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안목 있는 지도자는 인간이 노력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실천했다.
위魏나라 서문표가 업현의 현령이 되어 백성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장로들이 말했다.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에게 시집보내는 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신부를 전송하리다.” 그날이 되어 서문표가 강가에 나와서 신부를 보고 “이 처자는 아름답지 않소. 무당할멈은 강 속으로 들어가서 하백에게 ‘아름다운 처녀를 다시 구해서 오겠다.’ 고 말해 주시오.” 그리고 할멈을 강 속으로 던졌다. 시간이 흐른 후 소식이 없자 젊은 무당 3명을 강으로 던지고 ‘여자들이라 말을 못하는 가 보다. 남자들이 들어가서 전해 주시오. 삼로를 던졌다.’” 서문표는 허리를 굽혀 물을 향해 서 있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삼로가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호족 한 사람씩을 물로 들어가라 재촉하려 하니, 모두가 머리를 조아려 이마가 깨져 피가 땅위로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깐만 더 기다려 보자.” 서문표가 다시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서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것 같다. 너희들은 모두 돌아가라.” 업현의 관리나 백성들은 두려워했다.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해 아내를 얻어주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사기 골계열전>
무지한 지도자와 부패한 공직자, 토호세력들이 권력놀음에 빠져 백성들을 괴롭혔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죽어갔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에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문표는 준비된 지도자였다.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방안까지 준비하고 불편한 것을 해결해 준 것이다.
잘못된 무엇인가 바꾸지 않고 새로운 시도가 없다면 불행의 연속임을 간파한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논리로 철기시대에 대입하여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철기문명이 도래했다는 것을 간파한 지도자는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수리관개시설의 건설로 황하의 신인 하백에게 인신공양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해마다 우기 때만 되면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신이나 찾던 구태를 벗어나 지도자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무도한 세상을 이끄는 방법
자연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뜻을 받들어 각자가 판단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게 되었다.
공자가 말한다.
“함께共 공부學할 수 있어도 함께 도道를 향하여 나아갈適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함께 도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어도 함께與 설立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함께 설 수 있어도 함께與 변통權하기는 어렵다.” <자한편9-29>
| 무우에서 학문을 논하다. |
변통하는 도를 찾아가는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 처음에는 절차탁마하면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다음단계는 목표를 설정하여 올바른 가치를 지향한다. 가치가 다르면 같이 할 수 없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이념적 가치의 추구다. 3단계는 그 자리에서 필요한 것, 옳다고 생각한 가치를 실천한다. 건널 수 있는 개울이면 같이 간다. 극복할 수 없는 강이면 길을 달리해야 한다. 4단계는 지식과 원칙, 지향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형세를 판단하고 일을 추진한다. 원칙과 정의의 기준을 초월한 변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실행에 옮긴다. 변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천자나 제후정도의 위치에서 통치의 차원에서 할 수 있다. 아무나 변통이라는 미명하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람중심의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지향했던 공자. 어느 날 퇴근해 보니 마굿간에 불이 났다.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향당편10-12> 공자의 인간미가 넘친다. 지금껏 살면서 집 나간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는 보았지만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 찾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선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욕심의 그릇을 줄이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다운 사람의 도리를 찾아가야 한다.
자식교육에 열정이 남달랐던 다산선생은 18년간 유배생활하면서 두 아들에게 살아가는 기준을 제시했다.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와 이익과 해로움의 이해利害측면에서 구분 짓고 시비와 이해가 교차하는 4가지 행동모형.
①옳음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是利)
②옳은 것을 지키려다 해를 입는 것(是害)
③그릇됨을 따라가다 이로움을 얻는 것(非利)
④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非害)
다산선생은 사람들이 시비를 가리고 이해를 따지면서 모든 일을 잰다고 보았다. 이 4가지 행동 모형에서 사람들은 ‘①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일’ 에 집중하고 ‘④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일’은 외면해야 한다. 문제는 옳고 그름과 이로움과 해로움 중 어디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가의 문제다. ‘②옳은 것을 따르다가 손해를 볼 것인지, ③그릇된 것을 따르더라도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 선택의 순간에 다산선생은 무조건 ‘옳은 것을 먼저 따르라’ 고 했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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