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고문진보

고문진보 1강-서론,권학문(시)

벽암거사 2025. 12. 3. 15:14

知詩之難 甚於作詩之難- 시를 안다는 것은 시를 짓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고문진보는 총 22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집 12237편과 후집 10384편을 아우르는 방대한 선집이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유학자에게 필수 교양서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는 경전을 읽고 저녁에는 역사를 보며, 왼쪽에는 시, 오른쪽에는 문장을 두고 공부하는 전형적인 선비의 독서목록인 셈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대개 논어맹자등 사서를 먼저 읽고, 그 다음 단계로 고문진보를 익히고, 마지막으로 오경(五經)에 들어가는 순서를 밟았다. 정사문의 에서 “어릴 때 학문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논어맹자를 먼저 읽히고, 그 다음에 고문을 읽힌다고 하였듯이, 고문진보는 유학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셈이다.

 

고문진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한유는 문장은 도(道)를 싣는 것이라 했고(文以載道), 유종원은 문장을 통해 도를 밝힌다(文以明道)고 했다.

김시습은 세상 사람들이 보배라며 다투는 재물은 결국 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고문진보를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면 가슴 속에서 옥이 부딪히는 듯한 맑은 울림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율곡 이이는 선조로부터 어린 시절 어떤 공부를 했는지 묻자, 한유의 문장과 고문진보, 그리고 시문과 서경을 익혔다고 답했다.   

김종직 역시 고문진보가 집집마다 비치되어 사람들이 서로 외우고 문장의 법도로 삼게 되면 글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칭송했다.

 

반면 비판적 견해도 있었다. 허균은 고문진보의 편찬자 황견을 시골 훈장에 불과하다며, 명확한 기준 없이 선집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평가절하했다. 이처럼 고문진보는 유학적 문장 수련의 핵심 교재로 존중받는 한편, 편찬 방식과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도 존재했던 문헌이다.

권학문편에서

진종황제는 학문의 가치를 일상의 욕망과 대비해 설파한다. 그는 집안을 부유하게 만들고자 굳이 좋은 밭을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책 속에는 이미 천 종의 곡식과 같은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안함을 얻기 위해 높은 집을 지을 필요도 없다. 책 속에는 황금집이라 할 만한, 마음을 넉넉히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종황제의 문장속으로 들어가보자. 문을 나설 때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글 속에는 마치 떼를 이루는 수레와 말처럼, 길을 열어주고 동행이 되어줄 수많은 인물과 사상이 들어 있다. 장가를 들려 하면서 좋은 중매가 없다고 탓할 필요도 없다. 책 속에는 옥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처럼,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미로운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내가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책을 가까이 하고, 창가에서 경전을 펼쳐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鍾粟.

安居不用架高堂, 書中自有黃金屋.

出門莫恨無人隨, 書中車馬多如簇.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男兒欲遂平生志, 六經勤向窓前讀.


집을 부유하게 하려고 좋은 밭 사려 마라, 글 가운데 본시 천종의 곡식 있다.

삶을 편하게 하려고 큰 집을 짓지 마라, 글 가운데 본시 황금집이 있다.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 없다고 탓하지 마라, 글 가운데 수레와 말이 떨기처럼 많다.

장가를 들려는데 좋은 중매 없다고 탓하지 마라, 글 가운데 옥 같은 여자 얼굴이 있다.

사내가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六經을 부지런히 창 앞에 펴놓고 읽어라@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비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들은 , 스마트폰, 안정된 직장 등을 통해 자유를 찾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에 얽매여 불편과 압박을 겪곤 한다. 자유는 무엇을 더 가지는 데서가 아니라 하나씩 내려놓고 비우는 데서 시작한다. 인간은 혼자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어도 괴로운 존재이지만, 그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삶의 지혜다. 혼자만의 고독과 타자와의 관계가 이루는 긴장 위를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것이다. 그 삶의 연장선에서 나는 서울과 가평을 오가며 생활한다. 중매에 대한 구절 역시 단순한 혼인을 넘어 인간 관계 전반을 생각하게 한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순임금도 부모의 허락 없이 스스로 짝을 택했다고 전해지듯, 중요한 결단에는 결국 타인의 보증이나 중개보다 자신의 판단과 인격이 더 큰 힘이 된다. 학문은 바로 그 판단의 근거를 넓히고 깊게 해주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평생 품고 있는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배움의 힘이 필요하다. 맹자가 말한 천강대임론(天將降大任於是人也)’하늘이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고난과 시련을 준다는 사상은 뜻을 품은 자에게 학문과 수양은 필수라는 점을 일깨운다. 고난을 견디고 큰일을 감당할 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책 속의 사유를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권학문은 단지 지식의 축적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한 내적 무장을 촉구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왕안석의 권학문은 독서의 가치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글이다. 그는 책을 읽는 데는 큰 비용이 들지 않지만, 그 이익은 만 배에 달한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사람을 관직에 오르게 할 재능이 깃들어 있고, 군자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여유가 있으면 서재를 짓고, 여유가 없으면 작은 책궤라도 마련하여 책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가에서 옛 글을 펼쳐 보며, 밤에는 등불 아래에서 그 뜻을 깊이 헤아리는 삶, 이것이 바로 학문의 길이다. 가난한 이는 책으로 부유해지고, 부유한 이는 책으로 품격을 더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책으로 어질게 되고, 어진 사람은 책으로 식견을 넓히며 성장한다. 책 때문에 영화로워진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다가 추락한 사람은 없다는 말 역시 독서의 순정한 가치를 잘 드러낸다.

 그러니 금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서 읽으라. 책을 읽으면 다시 금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좋은 책은 만나기도 어렵고, 또한 후세에 남길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책 읽는 이에게 권하노니, 좋은 책을 만나면 반드시 마음에 깊이 새겨 오래 기억하도록 하라.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책 한 권 가격은 대개 2만 원 내외이지만, 그 안에 담긴 통찰과 표현력은 강사라면 강의 실력을 키우고, 축사나 발표 능력, 심지어 마이크 앞에서의 두려움까지 없애주는 힘이 된다. 결국 독서는 자기표현 능력을 넓히고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경제적 투자다. 또한 왕안석이 말한 창가와 등불 아래의 공부는 오늘날의 주독야독(晝讀夜讀)을 떠올리게 한다. 낮에도 책읽고 밤에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시간의 틈새에서 스스로를 갈아내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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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不破費 讀書萬倍利

書顯官人才 書添君子智

有卽起書樓 無卽致書櫃

窓前看古書 燈下尋書義

貧者因書富 富者因書貴

愚者得書賢 賢者因書利

只見讀書榮 不見讀書墜

賣金買書讀 讀書買金易

好書卒難逢 好書眞難致

奉勸讀書人 好書在心記

 

독서하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고 독서하면 만 배나 이롭다
책 속엔 사람의 재능이 나타나고 책 속엔 군자의 지혜가 있다
여유 있거든 서재를 짓고 여유 없으면 책궤를 만들라
창 앞에서 옛글을 보고 등불아래서 글 뜻을 찾으라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부자 되고 부자는 책으로 귀하게 된다
어리석은 자는 책을 얻어 어질게 되고
어진 자는 책으로 인해 이롭다
책 때문에 영화 얻은 것 보았고 
책 때문에 추락하는 것 보지 못하였다
금을 팔아 책을 사서 읽으라.
독서하면 금 모의기 쉽다
  좋은 책은 만나기 어렵고 
좋은 책은 참으로 만들기도 어렵구나
 독서하는 이에게 조심해서 권고하노니 
좋은 책을 만나거든 마음에 두어 기억하라

 

경제원리로 본 독서의 힘 역시 의미가 있다. 주식 초보를 뜻하는 주린이가 종잣돈만 바라보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한 자산은 지식과 사고력에서 온다. 책을 통한 경험의 축적은 시장보다 더 안정적인 복리의 힘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책은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버리고 산을 돌아 다니며 신맛 나는 배를 따지 말라(棄却甜桃樹 巡山摘醋梨)”는 말처럼, 멀리서 새로운 지식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좋은 글을 곱씹고 기록하는 것이 더 큰 성장을 준다. 가까운 곳, 손에 닿는 책을 충실히 읽고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왕안석이 전하려던 독서의 참된 길이다.

 

백거이의 권학문은 농사와 교육을 나란히 놓고, 가정과 사회가 지켜야 할 근본을 간결하고 힘 있게 설파한 글이다. 그는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곳간이 빈 것처럼,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어진다고 말한다. 농사를 게을리하면 세월이 지나며 삶이 궁핍해지고, 교육을 소홀히 하면 후손은 예의와 도리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밭을 갈지 않고 자식과 후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와 어른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한 사회의 번성과 개인의 품격은 결국 경작과 교육이라는 두 축 위에 세워진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다.

 

有田不耕倉廩虛

有書不敎子孫愚

倉廩虛兮歲月乏

子孫愚兮禮義踈

若惟不耕與不敎

是乃父兄之過歟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곳간이 비고

책이 있어도 읽지 않으면 자손 어리석어진다.

곳간 비면 생활 궁핍해지고

자손 어리석어지면 예의가 소홀해지네.

만약 밭갈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 부형(父兄)의 잘못이라네.

 

이러한 교훈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때로는 공부를 잘하고 재능이 충분한 아이가 있음에도,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나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에 제때 진학하지 못하고 기회를 잃는 일이 있다. 백거이가 가르치지 않음은 부형의 죄라 한 까닭은, 교육은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어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학업의 재능을 피우는 것도,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결국 어른이 만들어야 할 토양이다.

맹자가 말한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다(無恒産無恒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안정된 생계 기반이 없으면 마음도 흔들리고,

도리와 의지를 지키기 어렵다. 밭을 경작해 곡식을 마련하는 것과 자식을 습득해 그 마음을 북돋우는 일은 결국 모두 항산을 만드는 과정이다. 삶의 토대가 튼튼해야 도덕과 학문이 자라난다는 옛 성현의 지혜가 백거이의 글과 맞닿는다.

이처럼 권학문은 단순한 훈계문을 넘어, 한 가정과 한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원리를 간결하게 담아낸 글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땅을 돌보듯 마음을 돌보고, 재산을 증식하듯 지식을 기르며, 농사와 배움이라는 두 바퀴를 균형 있게 굴릴 때 삶은 비로소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주희의 권학시는 짧은 네 구절 속에 배움의 긴 여정과 세월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고 말하며, 젊음의 시절이 얼마나 짧고, 학문이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 일깨운다. “한 치의 세월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구절은 단순한 시간관리의 조언이 아니라, 배움의 축적은 보이지 않는 작은 순간들의 반복에서 이루어진다는 통찰이다. 연못가에 봄풀이 돋는 줄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섬돌 앞의 오동잎에서는 가을 소리가 난다. 계절은 말없이 바뀌고, 인간의 나이 또한 조용히 흘러가며, 미루는 사이 배움의 기회는 금세 사라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메시지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양호(陽貨)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양호가 공자를 불러 말하길, “보배를 품고도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공자는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양호는 다시 일하기를 좋아한다 하면서 때를 놓치는 것이 지혜라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공자는 역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이어 양호는 해와 달이 가버리니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공자는 알겠다. 이제 내가 벼슬하겠다고 응한다. 이 일화는 주희의 시와 직접 연결된다. 선한 뜻과 능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행동할 때를 놓쳐버리는 것, 시간이 흘러간 뒤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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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가 봄풀들 꿈꾸는 것도 몰랐더니

섬돌 위에 어느새 오동잎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주희의 권학시처럼 벌써 인생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유 역시 이 시의 메시지를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는 익숙한 환경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새로운 자극이 줄어들어 기억의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뇌는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을 길게 인식하고, 반복이 많을수록 짧게 인식한다. 어린 시절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매일이 새롭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새로운 경험보다 반복이 많기 때문이다. 주희가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고 한 까닭도,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지속적으로 시간과 정신을 쏟아야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권학시는 단순히 젊어서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Do it now.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니 능력과 뜻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행하라, 배우는 일은 작은 순간 하나하나를 존중할 때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는 깊은 가르침이다. 봄풀이 돋는 줄도 모른 채 가을이 와버리는 것처럼, 삶 역시 어느새 계절을 건너뛴다. 주희는 그 사실을 시로 압축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경계를 남긴 것이다.

 

한유의 부독서성남은 아들에게 보내는 긴 훈계문이자, 한 인간이 어떻게 사람답게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나무가 목수의 손길에 의해 둥글고 모난 형태를 갖추듯,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도 시서(詩書), 즉 문화와 학문의 축적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학문은 부지런히 힘써야 배 속에 채워지고, 게으르면 마음과 정신이 텅 비게 된다. 처음엔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같았으나, 배움의 유무에 따라 결국 서로 다른 삶의 길과 사회적 지위를 걷게 된다고 말한다.

한유는 또한 군자와 소인의 구분이 출신 성분이나 부모의 신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역사적으로 삼공과 재상과 같은 고위 인사가 평범한 농민 출신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들의 후손이 가난에 허덕이는 예도 있다는 점을 든다. 결국 사람의 사회적 품격은 학문과 덕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문장은 귀하게 여기되, 경전의 가르침은 밭을 경작하는 일과 같아서 인생에 깊은 자양분을 제공한다. 반면, 근본 없는 고인 물처럼 표면만 넘실대고 속은 비어 있는 지식은 금세 사라지고, 인격에도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고금에 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옷만 입었을 뿐, 속은 짐승과 다르지 않으며, 불의에 빠져 있으면서 명예를 구하는 것은 허망한 일임을 일깨운다.

 

木之就規矩 在梓匠輪輿
목지취규구 재재장륜여

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인지능위인 유복유시서

詩書勤乃有 不勤腹空虛
시서근내유 불근복공허

欲知學之力 賢愚同一初
욕지학지력 현우동일초

由其不能學 所入遂異閭
유기불능학 소입수이려

 

나무가 둥글거나 모나게 하는 것은 가구나 수레를 만드는 목수에게 달렸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배 속에 시서(詩書)가 있느냐에 달렸다.

시서(詩書)는 부지런하면 곧 갖게 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배 속이 텅 비게 된다.

배움의 힘을 알고자 한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처음에는 같았음을 알라.

그가 배우지 못했으므로 말미암아 들어간 마을(신분)이 마침내 달라진 것이네.

<중략>

君子與小人 不繫父母且

不見公與相 起身自犂鋤

不見三公後 寒饑出無驢

文章豈不貴 經訓乃菑畬

潢潦無根源 朝滿夕已除

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

行身陷不義 況望多名譽

 

군자와 소인은 부모에게 관련된 것은 아니니,

삼공과 재상이 농민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삼공의 후손이 헐벗고 굶주리고 노새도 없이 나가는 것을.

문장이 어찌 귀하지 않으리. 경전의 가르침은 곧 전답과 같은 것이네.

고인 빗물은 근원이 없으니 아침에 찼다가도 저녁엔 이미 없어지네.

사람으로서 고금에 통하지 않으면 소나 말이 옷 입은 것이라.

자신의 행동이 불의에 빠지고도 하물며 많은 명예를 바라는가?

 

이러한 한유의 가르침은 논어에서 공자가 조수(鳥獸)가 아니라면 함께 무리를 이룰 수 있다고 한 말과 연결된다.

공자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이유를 도()배움과 예, 역사를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 배움 없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조수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이다. 학문은 인간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한편, 제나라 환공이 독서에 몰두하고 있을 때 윤편이 지나가며 군주가 읽는 것은 모두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비웃었다. 윤편의 이 말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옛 가르침에 얽매이기보다 현실을 꿰뚫는 직관과 행동력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는 말이나 글로 완전히 전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지혜를 강조한 것이다.

 

한유는 아들에게 나무가 목수의 손길로 제 모양을 갖추듯, 사람이 경전과 문장을 통해 깊은 인간다움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문은 단지 지식의 축적을 넘어서 신분과 삶의 수준을 바꾸는 힘이며, 고금에 통하는 사람만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