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논어 교실

學, 의혹을 넘어 확신 1

벽암거사 2025. 7. 26. 07:31

 

 

 

배움이란?

 

자를 풀어보자.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양손을 이용하여 산가지-점을 칠 때 쓰는 도구-를 세고 있는 모습이다. 산가지로 열심히 셈을 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무엇을 배운다는 의미다. 의문이나 궁금한 것을 부호로는 물음표(?)로 표기한다. 모르는 것을 묻고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것. 낚시 바늘로 고기를 낚아채듯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배우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배움은 생각이 전제되어야 하고 기억으로 저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물을 보고 느끼고 경험을 통하여 확신에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자사상의 핵심이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므로 배우는 목적이 다양성의 인정에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서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가 논두렁에 피(가라지)가 뽑혀 내팽겨진 것을 발견했다. 피는 농부의 입장에서는 영양분을 빨아먹는 암적인 존재다. 길을 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벼와 다를 뿐이다. 벼라서 살아남고 피니까 뽑혀져야만 하는가. 배움에 임해서는 같음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책에서 읽은 이 구절이 정돈되지 않았다. 현장을 걸으면서 눈으로 확인하고서 가슴에 와 닿았다.

배우는 목적도 각자의 취향과 능력에 맞는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 여럿 중에 하나가 되려고 하면 피곤하고 강박관념이 생겨 배우는 즐거움이 사라진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역량과 경험치를 배우는 사람에게 온전히 베풀어야 한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가르침을 지식의 습득에 머물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본받아야 한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했다. 스스로에 대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쳐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열 집 정도의 마을에도 진심을 다하고 신실한 사람이 있지만 구(공자 자신)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공야장편5-27>

 

시대를 양심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로 전심전력하는 충과 거짓이 없는 신실을 양보하더라도 배우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는 결연함이 묻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섭공이 공자에 대해서 자로에게 묻는데 대답을 못했다. 이 사실을 알고 공자가 자기 소개서를 간단명료하게 제시한다.

 

학문에 분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에 근심도 잊고, 장차 늙어가는 것도 잊었다.” <술이편7-18>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는 몰입의 단계이다. 몰입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집중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레빈의 풀베기 장면을 보자. 레빈은 풀베기에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그런 때에는 낫 그자체가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한 듯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움직여 나아간다.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그 자체가 배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차 육체를 움직이는 상태이다. 몰입의 특징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제 즐거움에 빠져 늙어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공자는 몰입의 지존이었다.

공자는 왜 배움에 집착했을까.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배우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학습을 통해 재주나 능력을 갖추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필자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2개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직업기술연마와 실무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공자는 어릴 때 기술을 많이 배워 모르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생존하는 기술이고 생업에 필요한 무기이다. 다음은 나는 누군가? 물음에 답할 수 있고 삶의 방향성유지이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기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두 번째 무기이다. 시민으로서 소양을 강화하기 위한 6-예악사어서수-와 어진 마음, 지혜, 용기를 갖추면 근심거리가 사라져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사람을 보면 생활용 무기는 갖추었을지 모르지만 정체성과 가치관의 혼돈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철학 없는 삶을 살다보니 좌절을 맛보고 그동안 쌓은 명성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두 아들에게 폐족의 신분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공 부 뿐이라고 했다. 공부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2개의 무기를 갖추는 밑거름이다.

공자가 말한다.

 

묵묵히 알아가며, 배우고 싫증내지 아니하며, 남을 가르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게 무엇이 갖추어져 있는가?” <술이편7-2>

배우고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정적이지만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정에 몰입하여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공자 나름의 채찍이다. 더욱 더 정진하면서 덕이 닦여지지 않은 것, 학업이 탐구되지 않는 것, 정의를 말하면서도 실천에 옮겨지지 않은 것, 선하지 않는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근심으로 삼으면서 즐기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논어의 첫 구절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로 시작한다.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제자들 중에 무사기질이 강한 자로가 공자학당에 들어가기 전에 공자께 주먹이 최고 다, 그까짓 글자공부해서 뭐 하냐고 덤비다가 급소를 한 방 맞고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이때 공자가 남산의 대나무를 비유하여 배움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자로가 남산에 대나무는 저절로 바르게 자란다. 잘라서 화살로 쓰면 무기가 되는데 배워서 무엇 하겠느냐고 따지듯 묻자, 공자가 화살 한 쪽에 깃을 꽂고 다른 한 쪽에 화살촉을 꽂으면 더 깊게, 더 멀리 나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기 공자세가>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후천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르침 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충격을 받고 멍한 자로가 느낀바 있어 가르침을 받겠다고 했다. 더하여 힘자랑만 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는 자로에게 공자는 66폐를 말한다.

 

어진 것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우둔해지고,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자해지고, 믿음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도적이 되고, 정직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혹해지고,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지고, 굳셈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무모 해진다.” <양화편17-8>

 

세상을 살아가는 덕목으로 어짊, 지혜, 믿음, 정직, 용기, 굳셈6가지를 말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발생하는 폐단을 지적한 것이다.

어진 것을 좋아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를 보자. 송나라 양공이 인접한 정나라와 남방에 있는 초나라와의 우호관계를 깨기 위해 공격했다. 예상대로 초나라가 구원군을 파견하자, 홍수泓水로 먼저 이동해 결전을 준비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는 절호의 기회에 공격을 건의한 참모들의 건의를 묵살했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강을 건넌 적군이 대열을 정비할 때 재차 공격을 건의하였으나 또 묵살했다. 적군이 전투태세를 갖춘 후 시작한 싸움에서 송나라는 대패하고 양공은 목숨까지 잃었다. 개인적인 도덕률에 빠져 군주로서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지혜를 쌓았어도 상대를 무시하는 방자한 태도는 둘의 관계를 소원하게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극한상황에서 정도를 말하지 않고 권도權道를 강조한다. 권도란 처해진 상황에 맞게 저울질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길가는 여자의 손을 잡으면 성추행범 취급당하지만 여름에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한 여자를 보면 손을 잡아 구조하는 것이 권도이다.

믿음 또한 자기의 믿음만 강조하면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전철 안에서 믿습니까? 믿으세요.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협박성 포교를 하는 사람들. 조직 내에서 상위직위에 있는 사람의 종교적 강요행위를 보면 도적의 무리라고 생각한다.

정직을 너무 강조하면 상대의 목을 조르고 압박하는 오류를 범한다. 양을 훔친 아버지를 아들이 신고해야 할까? 논어에서는 아버지는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주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보호하는 것은 자애이고, 자식이 아버지를 비호하는 것은 효이니 이는 법을 초월한 천륜이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에우티푸론은 사람을 죽인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기 위해 법정에 가던 중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아버지를 고발하는 건 불경한 일인데 자신이 불경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냐?”고 에우티프론에게 묻는다. 일련의 질문과 답변의 과정을 거쳐도 에우티프론은 자기 아버지를 고발하는 행위(경건함)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용기를 너무 내세우다보면 난폭해진다. 남산의 대나무와 같이 굳셈을 강조하다보면 경솔해져 절제력이 없다. 자로는 공자학당에 들어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용기 있고 충직한 제자로 인정받았으나 말년이 좋지 않았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급한 마음과 경솔한 행동으로 괴외의 난 때 목숨을 잃었다.

굳셈만 믿고 배우지 않으면 무모해진다. 마치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덤벼드는 것이나 맨 몸으로 깊은 강을 건너다 낭패를 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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