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과 모욕, 존엄을 향한 그림자
인간 사회는 존엄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권력과 언어는 그 존엄을 무심히 짓밟을 때가 있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욕은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나 조롱거리로 전락시켜 그 가치를 허물고, 모독은 공동체가 신성하게 지켜온 가치를 도구화하거나 훼손하여 사회적 기반을 흔든다. 모독은 성스러운 공간을 무너뜨리고, 모욕은 개인의 영혼을 짓밟는다. 전자가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후자는 인간 개별자의 존엄을 파괴한다. 두 행위는 모두 경멸과 무지에서 비롯되며, 궁극적으로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한다.
1980년 10월 27일, 새벽의 사찰들은 군홧발에 흔들렸다. 전두환 장군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을 앞세워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을 비롯한 승려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전국 각지 사찰과 암자를 뒤지며 천여 명의 승려들을 체포했다.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고, 일부는 삼청교육대와 교도소에서 순화교육을 받았다. 고문과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승려들도 있었다. 월주 스님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성금을 전달하고 신군부 지지 성명에 반대한 것이 표적이 된 원인으로 해석된다. 사찰이라는 성소가 군홧발에 짓밟히고, 종교적 존엄이 권력에 의해 훼손된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적 검열이 아니라 물리적 모독의 극명한 사례였다.

2021년, 국회 j 의원은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를 두고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통행세”라고 발언했다. 불교계는 즉시 반발하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언어의 칼날은 공동체의 존엄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신성한 전통을 희화화한 발언은 그 자체로 상징적 모독이었다.
모욕은 더욱 은밀하게 개인의 마음을 파고든다. 조선 중기, 개혁가 조광조는 권력과 부패를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인격을 향한 비수였다. “젊은 선비가 허황한 도학만 가지고 떠든다”는 말은 그의 사상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은 언어였다. 결국 조광조는 유배와 사약 속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죽음은 정치적 실패라기보다 인격적 모욕의 역사로 기록된다.
최근 국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유관기관 위원장에게 “뇌구조가 이상하다”고 발언한 사건이다. 논의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정당한 상처뿐이었다. 아무리 정치적 경쟁이 중요하더라도, 인격적 모욕은 절제되어야 한다.
10·27 법난은 불교의 성소를 군홧발로 짓밟은 물리적 모독이었고, j 의원의 발언은 사찰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상징적 모독이었다. 조광조의 희생은 한 인간의 영혼이 무참히 짓밟힌 역사적 모욕이었으며, 최근 국회에서 나온 “뇌구조가 이상하다”라는 발언은 존엄을 경시한 인격적 모욕이었다. 모독은 공동체의 신성을, 모욕은 개인의 영혼을 파괴한다.
성스러운 가치를 모독하지 않고, 개인의 인격을 모욕하지 않는 것. 존엄을 존중하는 순간, 사회는 비로소 인간다운 얼굴을 되찾는다. 모독과 모욕이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공자의 말씀을 한 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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