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의식 함양, 동양고전에 길을 묻다.
1. 분노와 갈등의 사회
가. 개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소한 부딪힘에도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 소리가 울리면 짜증이 먼저 치민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리를 꼬아 내 쪽 공간을 침범했다고 느끼는 순간 화가 난다. 운전 중 앞차가 늦게 간다고 경적을 울리고, 끼어들기를 당했다는 이유로 차를 세워 멱살을 잡는다. 약속 장소에서 상대가 단 5분 늦어도 분노가 솟는다. 밥을 제때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와 남편의 언성이 높아지고, 길에서 어깨를 스쳤다는 이유로 주먹질이 오가며, 화장실에서 쳐다봤다는 이유로 살인이 벌어진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분노와 갈등의 사회가 되었다. 미소로 상대를 맞이할 수는 없을까. 무한한 정신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는 없을까.
나. 갈등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인류는 최초에 지구의 청소부였다. 밀림의 지배자인 사자나 호랑이는 동굴에서 낮잠을 자다가 배가 고프면 벌판으로 나와 강한 이빨과 조직화된 사냥으로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추우면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에게는 날카로운 이빨도, 거센 뿔도 없었다. 인간은 쫓기는 존재였다. 맹수가 먹다 남긴 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 먹으며 겨우 생존을 이어갔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 있는 자는 이가 없다는 말은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다 인간은 불을 발견하고 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질서는 뒤집혔다. 맹수가 휴식하던 동굴에 불을 던져 사자를 잡을 수 있었고, 손으로 도끼와 새총 같은 도구를 만들어 필요한 것을 얻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 잡았다. 수렵과 유목 생활을 접고 정착을 시작했고, 농업은 도구의 발달과 함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한 사람이 열 사람 이상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되자 잉여가 생겼고, 부족은 씨족으로, 씨족은 가족 단위로 분화되며 삶의 질은 향상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잉여가 생기자 질서라는 이름으로 계급이 형성되었다. ‘민(民)’ 자가 눈에 창살을 꽂은 형상이라는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배층은 자신을 ‘사람 인(人)’이라 불렀고, 그렇게 ‘인민(人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강자 중에서도 더 강한 자가 등장하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고착되었다. 지배층은 사람을 관리하며 노동에서 벗어났고, 왕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준비했다. 열 명 중 한 명만 농사를 짓고 아홉 명은 군사로 징집되었다.
전쟁터로 끌려간 장정들은 죽음으로 돌아왔다. 겨우 가정을 꾸릴 만한 삶이었는데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사람의 행동은 이 지점에서 짐승보다도 잔혹해졌다. 짐승은 싸우다 상대가 물러서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무기를 만들고, 살육을 조직화하며, 마침내 집단 매장이라는 잔혹한 행위에 이르렀다.
남겨진 여인들, 어머니들은 어떠했을까. 남편이 전쟁터로 끌려간 뒤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생산력은 떨어졌고 국가는 세금을 독촉했다. 결국 산골로 숨어들었지만,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았다. 호랑이의 위협 앞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갈등과 분노의 세상을 공자는 이미 꿰뚫어 보았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2. 갈등하는 현상의 진단
갈등이라는 단어는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의 결합이다.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렇게 꼬임은 끝없이 지속된다.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방향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부호 ‘?’를 보자. 한 사람은 물음표라 하고, 다른 사람은 낚시바늘이라 말할 수 있다.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붐비는 식당에서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 다가와 “실례합니다, 자리 있나요?”라고 묻는다. “네”라는 대답은 여러 의미를 품는다. 혼자 식사 중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앉아도 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갈등은 이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반대편의 시선이 있음을 인식할 때 갈등은 줄어든다.
조직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안정 속에 존재하지만 외부 충격이 임계점을 넘으면 흔들리거나 붕괴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자기주장은 하되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넘지 않는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말은 표면과 내면이 다를 수 있다. 커피숍에서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말은 무관심이 아니라 배려이거나 주저함일 수 있다.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왜 그렇게 말했는가에 주목해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결국 갈등을 줄이는 길은 나와 상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는 데 있다.
3. 동양고전에 길을 묻다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이다.
장자 「산목편」의 ‘빈 배’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강을 건너다 빈 배와 부딪히면 누구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는 시작된다. 세상을 건너며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갈등은 사라진다.
'빈 배 정신'을 무장한 상태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동양의 큰 스승인 공자는 아래의 4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배려의 마음, 곧 인(仁)은 충서(忠恕)에서 나온다. 충은 자신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서는 그 마음을 상대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기독교의 황금률, 불교의 자리이타와도 맞닿아 있다.
둘째, 사람은 덕으로 이끌어야 한다. 북극성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동안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돈다. 좋은 말은 힘이 아니라 배려에서 나온다.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먼 사람도 찾아온다. 낮춤은 끌어당기는 힘이다.
셋째, 질서는 예(禮)에서 완성된다. 군자는 사불출기위(思不出其位),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삼간다. 예의 본질은 조화다. 나의 에고를 누르고 상대가 내민 손을 기꺼이 잡는 것, 그것이 예다.
넷째, 군자는 무조건 좋은 사람만은 아니다. 원한은 원칙으로, 덕은 덕으로 갚는다(以直報怨 以德報德). 불의한 부귀는 오래가지 않는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결론
분노와 갈등의 사회에서 화합과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민주시민의 역할에 달려 있다. 올바른 민주시민은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분발하여 배우고, 때를 놓치지 않으며, 지·덕·체를 고르게 닦아 공동체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다.
공자의 꿈은 폭력과 용맹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매력과 성찰로 관계를 맺는 사회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동양고전이 건네는 가장 깊은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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