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의 시조는 기棄이다. 그의 어머니는 제곡의 본부인인 강원인데 들판에 나갔다가 발자국을 보고 충동을 느껴 밟았더니 임신이 되어 아이가 태어났다. 불길한 생각에 골목에 버렸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가축들은 피해 갔고 산속에 버렸더니 사람들이 구해 주었다. 이번에는 얼음 위에 버리니 새가 날개로 아이를 보호해 주는 등 신기한 일이 반복되자 하늘이 내린 아이라 생각하고 잘 길렀다. 나중에 요임금이 후직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세력이 약했던 후손들은 은나라에 밀려서 북쪽으로 피해서 살았다. 부족장인 공유는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아 부족을 이끌고 주원평야에 정착했다. 이후 공유의 9대 후손인 고공단보가 빈邠에서 북쪽 오랑캐인 적인狄人을 피해 양산을 넘어 기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주周라고 했다.
고공단보에게는 태백, 중옹, 계력이란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장 현명하고 용감한 계력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 눈치를 챈 태백은 남쪽으로 떠난다. 공자가 태백에 대해 말한다.
“태백은 덕이 지극한 사람이라 하겠다. 세 번이나 천하를 사양했어도 백성들은 그를 찬양할 길이 없었다.” <태백편8-1>
태백과 중옹은 남방으로 피신하였다가 나중에 오나라와 월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계력은 태임과 결혼하여 창昌을 낳았다. 창이 은나라 폭군 주왕 밑에서 서백이라는 벼슬을 하다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의 구출을 도와준 이가 여상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창이 죽자 아들 발發의 스승이 되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기원전 1060년 발發은 주변 부족국가들과의 연합을 통해 하남성에 있는 목야의 전투에서 은나라 대군을 격파했다. 현재의 시안 부근인 호경을 도읍지로 정하고 아버지(昌)을 문왕으로 추대했고, 건국 공신들에게는 지역을 자체적으로 맡아서 통치하도록 했다.
주나라에는 하늘이 내리신 커다란 혜택으로 훌륭한 인물이 참으로 많았다. 그리하여 무왕이 말했다. “비록 가까운 친척이 있다 해도 어진 사람만은 못할 것이다. 백성에게 잘못이 있으면 그 죄는 나 한사람에게 있다.” 무왕은 도량형을 신중하게 다루어 착오가 없게 하고, 법도를 심의하여 이를 개선했다. 폐지한 관서를 부활하여 사방의 정사가 잘 시행되었으며 멸망한 나라를 부흥시켜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초야에 묻힌 인재를 기용하여 천하의 민심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소중하게 여긴 것은 백성들의 식량과 상사喪事와 제사였다. 관대하면 백성의 지지를 얻고 신의가 있으면 백성들이 믿고 따르게 된다. 행동이 민첩하면 공을 세울 것이고, 공평하면 백성들이 좋아할 것이다. <요왈편20-1>
천하를 평정한 발發(무왕)은 왕이 되어 공신들과 친척을 제후로 책봉해 각 지역을 통치하는 봉건제도를 시작했으나 3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무왕의 뒤를 이어 아들 송誦이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는데 그가 바로 성왕이다. 어린 조카가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부족하여 삼촌인 주공 단旦이 7년 동안 섭정을 했다. 한편 은나라는 주왕의 아들 무경으로 하여금 조상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동생 관숙, 채숙, 곽숙으로 하여금 감시토록 했다. 그들은 주공이 정권을 찬탈할 것을 우려하여 반란(3감의 난)을 일으켰다. 주공은 이들을 진압하고 사형에 처했다. 다시 동방으로 원정하여 회수에서 산동까지 동이, 회이 등 여러 부족을 물리치고 중원통치를 위한 동방의 거점을 새로 건설했다. 섭정기간동안 각종 법을 제정하고 정비하여 주나라의 기틀을 잡고 번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주공은 은나라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도록 은의 왕자인 미자계를 상구지방으로 파견하여 송나라를, 태공망을 산동반도의 동이를 통치하도록 영구지방에 파견하여 제나라를 건설했다. 막내 강숙을 은나라의 옛 터전에 파견하여 위나라를, 아들 백금을 산동지방의 제수유역에 파견하여 노나라를 건설했다. 소공 석은 하북지방으로 진출하여 연나라를, 성왕의 아우인 당숙 우는 산서성 분수지역에 진나라를 건설토록 했다.<춘추좌전>
주공은 백성들이나 관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으며 이후 공자는 “내가 늙어 주공이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술이편7-5>고 흠모했다. 이어서 성왕, 강왕 등이 약 260년간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10대 여勵왕 때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체彘라는 곳으로 쫓아버리고 14년 동안 공화共和정치를 했다. 공화란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신하들이 의논해 다스린다는 뜻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이었다. 이어서 왕위에 오른 사람은 선왕 정精이다. 선대의 잘못으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린 탓에 쉽게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회복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기원전 779년 섬서성 남동쪽 포국을 정벌하고 유幽왕이 왕위에 오르나 그는 포사를 후궁으로 맞이하면서 걸‧주에 버금가는 타락한 정치로 나라를 망쳤다.
포국의 대부 유향이 폭정을 일삼는 유왕에게 간언하자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아들 홍덕은 아버지를 풀어내기 위해 포사를 왕에게 바쳤다. 포사의 출생 비밀은 요괴스럽다. 한 궁녀가 도마뱀이 지나간 흔적을 밟았는데 임신이 되었다. 임신한지 40년 만에 딸을 낳았는데 불길한 조짐에 겁이 나서 강가에 버렸다. 길을 가던 사람이 아이를 구해서 포국으로 데려가 키웠다. 그녀는 무럭무럭 자라 붉은 입술에 하얀 이와 매혹적인 눈을 가져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유왕은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조회도 나오지 않았다. 왕비인 신후를 무시하고 태자로 책봉된 의구마저 폐위하여 외가인 신나라로 쫓아버리고 포사가 낳은 아들 백복을 후계자로 임명했다.
유왕 재위 11년 태자가 쫓겨나자 화가 난 신후왕비 일족은 유목생활을 하던 견융족과 연합하여 주나라를 공격했다. 유왕은 제후들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봉화를 올렸으나 아무도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견융족의 족장은 공격한 지 10일 만에 궁궐을 함락하고 유왕과 백복을 처형하자 포사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로서 유왕의 시대는 가고 의구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평왕이다.
기원전 770년 평왕은 도성을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기는데 그 이전을 서주시대라고 하고 낙양으로 옮기고 난 이후부터 기원전256년 진나라가 망할 때까지를 동주시대라고 한다.
평왕이 죽고 그의 손자 임林이 즉위하니 환왕이다. 그는 이름만 왕일 뿐 아무 힘이 없었다. 예를 들면 조그마한 영토의 정나라 장공이 주나라를 침범하여 보리를 훔치고 벼를 베어오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다못한 환왕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공격하지만 오히려 패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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