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황5제
우리나라의 역사가 단군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하듯이 중국 사람들은 3황5제인 신화시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3황5제에 대한 기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3황은 BC 2800년 무렵에 살았는데 여와씨, 복희씨, 신농씨이다.
여와는 인간을 창조한 중국의 시조어머니이며 성은 풍風씨이고 여명이라고 불렀다.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형상이었다. 혼인 제도를 만들어 자식을 낳고 인류를 번식할 수 있게 했다.
복희씨는 ‘큰 하늘’이란 뜻의 태호太昊라는 호칭으로도 불린다. 상체는 사람이나 하체는 뱀(용)의 모습이었다. 성은 풍風씨로 여와와 남매사이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물을 만들어 백성들이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했으며 우주만물의 이치를 설명한 주역의 기본인 복희팔괘를 만들었다.
신농씨는 강수라는 곳에서 태어나 성을 강姜씨로 정했다. 머리는 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형상이었다. 쟁기를 만들어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5곡의 파종법을 교육하여 백성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불을 만들어 백성들이 고기나 음식을 구워 먹을 수 있게 해 그의 별명은 염제炎帝이다.
반인반수의 신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던 3황을 지나서 이제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된 5제 시대를 맞이했다.
5제는 황제黃帝,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을 말한다. 5제 시대를 연 황제는 유웅국의 임금인 소전의 아들로 중국민족의 시조라고 볼 수 있다. 성은 공손이고 이름이 헌원이다. 헌원이라는 언덕에 살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럽고 총명하여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말을 했다고 한다.
황제(헌원)가 성인이 될 무렵 신농씨 후손들의 덕이 쇠퇴하여 제후들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헌원은 제후들을 토벌하고 천하를 평정했다. 수도를 탁록으로 정하고 백성들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약을 만들어 백성들을 치료받게 하였으며 창힐에게는 문자를, 영윤에게는 악기를 만들도록 했다. 대요로 하여금 ‘갑.을.병.정…’ 으로 시작되는 10간과 ‘자,축,인,묘 …’ 로 시작되는 12지를 결합한 60갑자를 만들게 했다.
황제가 죽자 교산에 매장했으며 큰아들 현효가 왕이 되었다. 현효가 죽자 동생인 창의의 아들 전욱, 고양씨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전욱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오곡을 번식시켰으며 사시와 오행의 기를 조화시켜 백성을 교화시키고 제사를 지냈다. 노비에 관한 법,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 등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그의 뒤를 이은 왕은 현효의 손자이며 황제의 증손자인 고신(제곡)이다.
제곡은 제후 진봉씨 딸과 결혼하여 방훈을 낳았는데 그가 유명한 제요帝堯,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요임금이다.
요임금은 하늘처럼 넓고 어진 마음과 신과 같은 지혜를 가졌다고 한다.
공자가 요임금을 회상한다.
“크도다 요의 임금됨이여! 높고 큰 것은 오직 하늘뿐인데 요임금만이 이를 본받았도다. 너무나 넓고 아득하여 백성들이 형용할 바를 몰랐도다. 위대 하도다, 그의 업적이여 빛나도다! 그가 이룩한 문화여!” <태백편8-19>
백성들은 그를 대하기를 태양과 같이 여기며 가뭄에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듯 했다. 요임금은 국호를 당唐으로 정하고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가서 백성들의 삶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루는 한 노인이 음식을 먹으면서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가꾸어 먹을 것을 구하니 임금인들 부러우랴!” 배를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잘 된 나라를 기뻐했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농업에 필요한 시기를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해 뜨는 시각을 찾아 농사짓는 시기를 알려 주었고 1년을 366일로 하고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었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어서 후계자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 단주가 있었으나 성격이 포악하고 천하를 다스릴 인물이 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훌륭한 인재를 찾아오도록 명령했다.
신하들이 단주를 추천하자 “그가 천하를 다스리면 한 사람만 즐겁고 천하가 괴로워 할 것이다” 며 거절했다.
요임금이 처음에는 허유許由라는 사람에게 마음이 있었으나 그는 기산으로 숨어버렸다. 순舜이라는 사람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우며 어질다고 추천하여 관찰하였더니 아래의 사례가 있었다.

역산을 순찰할 때 농부들이 서로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순은 그곳에 머물며 같이 일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어느 날부터 농부들은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농사를 지었다.
뇌택이란 곳에서 고기잡이 하면서 잠시 머물렀는데 서로 가옥의 부지 문제로 오랫동안 다투었던 어민들이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냈다.
하빈 지역을 순찰하였는데 도자기 굽는 도공들이 성급하게 일을 해 그곳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품질이 좋지 않았다. 순이 그 곳에 머물자 사람들이 온순해졌으며 예쁘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서경>
이런 사실을 보고 공자는 평가하기를 “농사일, 고기잡이, 도자기 굽는 일은 순의 본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순이 가서 일한 것은 백성들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 순은 진실로 어진 사람이다. 스스로 경작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그를 따를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의 덕에 의한 교화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고 했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 말했다. “아! 그대 순이여! 하늘의 운수가 그대의 몸에 있으니 진정으로 중용을 지키도록 하라. 사해의 백성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복록이 영원히 끊어지리라.” 순임금도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 이렇게 명했다. <요왈편20-1>
요임금이 순에게 많은 가축과 양식창고를 주는 것을 보고 질투하여 계모와 이복동생 상은 아버지 고수와 모의하여 순을 죽이려고 했다. 먼저 순에게 지붕을 수리하라 하고 순이 올라가자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렀다. 순은 미리 준비한 삿갓 두 개를 펼치며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순에게 우물을 파라고 했다. 음모를 눈치 챈 순은 우물을 파면서 탈출구를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물 속에 들어가자 계모와 이복동생은 입구를 묻어버렸다. 하지만 순은 탈출구를 이용하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능력과 지혜를 보고 30년간 관찰한 요임금은 순에게 정사를 총괄하게 하고 8년 후 세상을 떠났다. 순은 3년의 복상을 마치고 요임금의 적자인 단주에게 왕위를 넘기고 황하의 남쪽 땅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모든 제후들이 순을 찾았고 천자로 여겼다. 순은 “하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 며 천자의 지위에 올랐다.
공자가 순임금을 평가하여 말한다.
“순임금에게는 신하 다섯이 있어서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태백편8-20>
순임금은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우禹를 오늘날의 건설교통부장관에 후직을 농수산부장관에 설을 교육부 장관에 고요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그 중에서도 우는 공적이 컸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시 한 정책이 치수治水, 즉 강의 범람을 막는 것이었다.
황하의 범람을 고민하던 차에 우에게 임무를 주었다. 우는 황하의 흐름과 주변 지형들이 범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13년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아버지 곤은 홍수가 났을 때 쌓이는 흙으로 제방을 쌓는 방법으로 공사를 하여 실패했다. 우는 토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물줄기가 서로 통하게 하여 고인 물이 빠져 나갈 수 있게 했다. 중국대륙의 강줄기와 산의 위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이 우다.
순임금의 인재등용정책에 힘입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자 제후들이 조공을 받쳤다. 순임금을 칭송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백성들은 행복해 했다.
공자가 말한다.
“인위적으로 애쓰는 일 없이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이다. 무엇을 하였는가! 그 몸을 공손히 하고 남쪽을 향해 있을 뿐이었다.” <위령공편15-5>
능력에 맞게 참모만 제대로 임명하고 나라의 운영방향을 제시한 상태에서 묵묵히 지켜보았을 뿐이다. 자신의 역할에 맞는 일을 수행하니 천자인 순은 몸가짐만 가지런하게 하고 방향이 어긋나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만 관찰할 뿐이었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 39년 만에 순임금은 창오의 벌판을 순행하다가 죽었다.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이 통치한 시대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시대(대동사회)로 규정하고 이 시기를 ‘요순의 치’라고 한다.
Tip 앵콜을 좋아했던 공자
| 공자가 앙코르(Encore)를 연발했다면 이상하게 여길까? 흥이 돋으면 제자들과 어울려서 노래하며 감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즐긴 모양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를 때 그가 노래를 잘 부르면 반드시 그로 하여금 다시 하게 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들과 맞추어 불렀다.-여인가이선 필사반지 이후화지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술이편7-31> 오늘날로 치면 제자들과 수업이 끝나고 걸쭉하게 한 잔 마시고 노래방으로 이동해서 순번을 정해 노래를 부르는데 잘 부르는 제자에게 “Encore! Encore!"를 연발하면서 어울려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곤 한 모양이다. 성인군자로서 근엄함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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