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 강의/논어 교실

들어가면서

벽암거사 2025. 6. 24. 21:38

 

어떤 인생은 빛나고 화려하다. 누군가의 인생은 그 반대다. 가난과 질병, 재난과 약탈, 전쟁 등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이는 고통을 피해간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같이 슬퍼한다. 다른 누군가는 그런 고통이 있는지 자체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고통에 자신의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아 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사람도 있다.

기원전 551년 노나라에서 공자가 태어났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사회적으로는 신분제 사회,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제, 경제적으로는 봉건제도였다. 이 시기에 철기가 보급되면서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철제로 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생산량이 증대되었다. 인구가 급증하며 씨족단위 생활은 가족단위로 바뀌었다. 삶의 영역에서 먹을 것이 풍족하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뿐. 위정자들이 정복욕에 사로잡혀 전쟁을 일삼고 이를 뒷받침할 무기인 칼과 창의 등장으로 대량살상이 가능해지면서 삶이 아니라 죽음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피비린내 나는 처참한 현실을 보면서 공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필자는 공자가 살던 시대를 한마디로 쟁으로 표현하고 싶다. 쟁은 투쟁이고 분쟁이고 전쟁이다. 끝없는 투쟁과 분쟁은 전쟁으로 이어져 남자는 파리 목숨 같은 전쟁터로 끌려가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여자는 눈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으며, 어린 아이는 추위와 배고픔의 연장이었다. 지도층의 모습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당시 제나라는 전씨가 강씨로부터 권력을 찬탈했고, 나라는 한, , 씨가 지역을 나누어 다스렸으며, 노나라는 3환씨에게 권력이 넘어간 지 오래 되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의 현장.

기원전 548(공자나이 4살 때) 제나라의 대부 최저가 쫓기는 세자(훗날 장공)를 군주의 자리에 올렸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장공은 최저의 부인(당강)과 사통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저가 장공을 죽였다. 위나라 영공이 죽자 아들 괴외와 손자 첩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제나라 진성자(진항)가 그 군주인 간공()을 서주에서 시해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성들은 전쟁의 도구로, 세금을 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제후나 경대부가 죽으면 같이 일하던 식솔마저 생매장하는 순장제도가 있었으니 인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사람이 짐승보다 못한 현실을 보면서 공자는 인간답게 살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평천하의 세상을 꿈꾸었다. 의 사회를 화의 사회로 바꾸고 싶었다. ‘에서 시작하여 로 변화하는 행복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책 제목을 <행복한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나를 찾는 論語여행>으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의 목적지는 행복이고 여행의 도구는 논어이다.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누구의 아내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아버지로 투명인간처럼 살 수는 없다. 누구를 닮았고, 행동이 비슷하다는 유사인간으로 살 수도 없다. 나답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다. 주변 환경에 나를 맞추기 위해 자기를 기만을 할 필요가 없다. 저마다 자기만의 재능과 가치에 맞게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자존감을 찾는 것이 다운 삶이다.

자아를 찾고 단순한 지적호기심을 넘어 마음에 평안을 찾는 것, 자기중심적 생각을 넘어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며 공존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 행복이고 잘 사는 것 아닌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총량은 같은 것일까? 출세하여 권력을 잡았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 욕구를 위해서 사람들을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공감하고 공생하며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은 부족한가 보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은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를 읽으며 이치에 맞는 말을 배워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인간답게 사는 행복한 삶의 기준을 인문학적 소양과 양심 그리고 자신의 철학(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셋을 정립하고 아우를 수 있는 책이 바로 논어다. 필자는 살면서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난 후 체력이 향상되고 정신력도 강화되었다. 이후 마라톤에 도전하여 보스톤 마라톤, 100km 울트라 마라톤, 한반도횡단 325km 달리기 등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에 100회 이상 완주하며 의욕과 열정으로 살고 있다.

두 번째는 논어와의 만남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 살아왔지만 논어를 만나고 난 후 방향이 확실히 정해졌다.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떤 행위도, 경험도 모두가 논어와 연결되어 있다. 이제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내 삶의 마지막 여행까지 같이 할 길동무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부터 정의가 되어야겠다. 우선 학자들의 정의를 보자.

그리스 철학자 에피크루소는 갈등이 없는 고요한 상태라고 했다. 갈등葛藤은 한자어로 칡 갈, 등나무 등이다. 칡과 등나무는 서로 얽히고설켜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으로 상처를 입으면 교통사고 난 만큼의 충격이 가해진다고 한다. 일이 꼬이면 머리가 복잡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에피크루소는 행복의 정도를 욕망에 대한 성취도라고 했다. 이를테면 욕망이 10인데 성취한 것이 550% 행복하다는 의미다. 이 철학자의 주장을 빌리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크기를 줄이든지, 성취도를 높이면 된다. 욕망은 물과 같아서 너무 부족하면 마르고 반대로 너무 넘치면 재앙이 온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적절한 욕망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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