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적은 유융씨 부족의 딸이며 제곡의 두 번째 부인이다. 목욕을 갔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받아 삼켰다. 바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이 설楔이다. 설은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상商지방을 하사받고 은나라 시조가 되었다. 설이 죽자 아들 소명이 자리를 물려받고, 이후로 12대가 지나서 천을이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고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탕왕이다.
탕이 정벌명분을 말한다.
“소자 리履는 검은 수소牛를 바치며 감히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밝게 아룁니다. 죄 있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으며 하느님의 신하는 그 능력을 숨기지 않겠으며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겠습니다. 제 몸에 죄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 때문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요왈편20-1>
정벌의 명분은 죄 지은 자(걸 왕)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벌 후에 정치에 임하는 다짐도 하고 있다. 그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①가뭄이 들자 기우제를 올리는데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 기우제를 지내려는 순간 마침 비가 와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②탕이 교외에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 속으로 들어오도록 해 주소서” 하고 염원하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이에 탕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잡으려 하다니!” 하며 세 방면의 그물을 거두도록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제후들은 탕의 덕에 감탄하여 무조건 명령에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탕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처럼 학식과 덕을 겸비한 성인이었다.
백성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탕은 박亳지방에 도읍을 정한 후 주변 제후국을 정벌해 나갔다. 먼저 갈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갈나라 군주는 하늘과 조상에 대해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탕왕을 화나게 한 것은 어린아이가 농사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락을 들고 가는데 그것을 뺏어 먹고 아이를 죽여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탕은 갈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시위, 원, 곤오 등 작은 나라를 복속시켰다. 이후 은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대해져서 황하와 양자강 전역을 통치했다. 탕은 도읍지인 언사에 도성을 구축하여 궁궐을 지었다.
천하를 제패하고 천자의 지위에 오른 탕은 29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 태정, 외병이 왕위를 이었으나 불과 3~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재상 이윤은 태정의 아들 태갑을 천자의 지위에 앉혔다. 할아버지 탕왕을 본받도록 하였으나, 놀고 즐기다가 마침내 향락에 빠지고 포악해지기까지 했다. 이윤은 태갑을 궁궐을 나와 탕의 능이 있는 동궁에 기거하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자 태갑은 부지런히 책을 읽고 수양에 힘쓰며 서서히 변헤 훌륭한 천자가 되었다. 이후 은나라는 16대 제을이 죽은 후 아들 신辛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폭군 주紂왕이다.

주는 ‘의를 해치고 선을 훼손한다.’ 는 뜻이다. 재위초기에는 아홉 마리 소를 끌어당길 수 있는 힘과 호랑이를 때려눕힐 정도로 용맹스럽고 언변이 뛰어난 능력 있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능력을 과신하고 술과 여자를 탐했다.
주왕에게는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公(구후, 악후, 서백)이 있었다. 구후가 그의 능력을 믿고 딸을 시집보냈다. 주紂왕이 부인에게 음란한 행위를 요구하자 자제를 요청했지만 부인과 장인을 죽이고 시체로 젓갈을 담았다. 이런 악행을 보고 잘못된 처사라고 악후가 지적하자 그도 죽이고 시체로 포脯를 만들었다. 서백 또한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주왕의 포악한 행동 뒤에는 표독한 악녀 달기가 있었다.
달기는 소씨의 딸로 주왕에게 바쳐진 전리품이었다. 달기는 호사스런 궁전과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녹대를 지어달라고 졸랐고 7년에 걸친 공사는 나라 재정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하여 달기가 주왕에게 별을 따서 갖고 싶다고 하자 적성루-별星을 따摘는 누각樓-를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환락을 즐기고 백성들을 학대하기에 이르렀다. 큰 구덩이를 파고 구리기둥을 가로놓아 아래에 장작불을 지피고 그 위로 죄인들을 걷게 했다. 불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 즐기는 형벌인 포락지형炮烙之刑을 행했다. 악행은 계속 되었다. 손님을 초대하여 연회를 즐기면서 갑자기 옷을 벗게 했다. 수치심에 거절하는 자들에 대해서 웅덩이를 판 후 독사와 전갈을 집어넣고 그들을 빠뜨려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또한 임산부를 세워놓고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감별을 시험하면서 배를 가르는 고통을 가했다. 숙부인 비간이 주왕의 만행과 변태적 행위로 나라 일에 전념하지 않고 달기같은 요부와 놀아나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직언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달기는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가 있는데 확인이 필요하다며 심장을 도려냈다. 악행을 지켜본 기자가 주왕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고 미자는 노예가 되었다.
이런 폭정을 견디다 못한 서백의 아들 희발-나중에 주나라 무왕-이 주紂왕을 공격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이로서 은나라는 기원전 1598년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 존속하다가 멸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앞서 요순시대가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의 시대라면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의 시대를 걸‧주 시대라 하여 폭군의 대명사로 칭하고 있다.
이후 희발(무왕)은 은나라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들 무경에게 은을 다스리게 했다. 주변지역은 무왕의 아들과 공신들을 제후로 봉하여 무경과 은나라 유민들을 감시토록 했다. 무경은 무왕의 동생 관숙, 채숙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주공이 이를 진압하고 평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