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수필

<긴긴밤>을 읽고

벽암거사 2025. 8. 6. 00:29

 

 

자기다움, 그리고 종()을 넘은 연대

 

우리는 얼마나 자연과 타 존재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인간은 오랜 시간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동물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자연은 자원이 되었고, 동물은 도구로 전락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은 여전히 우리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루리의 <긴긴밤>은 이 당연시된 시선을 조용히 되묻는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방향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책에서 인상 깊은 인물은 코뿔소 노든이다. 그는 안락한 보호소의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길 위로 나선다. 배급되는 먹이와 안전한 울타리보다,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삶을 택한 것이다. 이는 자기다움을 지켜내는 태도의 상징이며, 편안함보다 본질적 가치를 좇는 존재의 고귀함을 보여준다. 변화와 고통이 따를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노든의 모습은 우리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러나 자기다움은 결코 고립된 개인주의가 아니다. 이 책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지점은 종을 넘은 연대. 연약한 펭귄 와 거대한 코뿔소 노든은 전혀 다른 존재이지만, 고통의 밤을 함께 건너며 진심 어린 관계를 맺는다. 둘 사이의 접촉성과 정서적 친밀감은 혈연이나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오히려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치쿠가 알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 알을 노든이 대신 품어주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희생과 책임의 선택이며, 존재 간의 깊은 신뢰를 상징한다. 결국 노든은 를 바다로 떠나보내며, 생명의 가능성을 이어간다. 이는 종을 넘은 가족보다 더 친밀한 관계, 곧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본질을 말해준다.

 

이 장면은 또한 노든이 자기 본성대로 사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동시에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또한 스스로를 억지로 길들이는 삶을 벗어나, 본성을 회복하려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결국, 노든과 는 모두 자기다움에 충실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존엄을 실현해낸 것이다.

 

이 책은 단지 동물들의 생존기를 넘어, 우리 사회를 향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혈연이나 종, 사회적 조건을 넘어 오직 시간과 감정의 교류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문화가정, 입양가족, 반려동물과의 관계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경쟁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정체성을 지키고 서로를 돌보는 삶의 연대가 인간다운 삶의 본질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말하고 싶다.

"진정한 삶은 자기다움에서 시작되고, 진정한 가족은 종을 넘은 연대에서 완성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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