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B

몽블랑7

벽암거사 2026. 7. 16. 16:46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욕망을 돌아보다

77일 화요일, 투르 드 몽블랑(TMB) 7구간은 이번 여정 가운데 가장 긴 하루였습니다. 퐁테 산장을 출발하여 낭보랑 산장과 발므 산장, 플랑 데 다메를 지나 본옴므 고개를 넘고, 크루아 뒤 본옴므 산장을 거쳐 레샤피유로 내려왔습니다. 이후 버스로 부르생모리스로 이동하여 랑지발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16km8시간에 걸쳐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오늘도 알프스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삶을 성찰할 여러 장면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산장을 나서자 길가에는 야생 블루베리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시중에서 사 먹던 크고 단 블루베리와는 달리 열매는 작았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새콤하고 강한 산미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문득 이것이 자연이 만든 본래의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 품종을 개량하며 더 크고, 더 달고, 더 보기 좋은 열매를 만들어 왔습니다. 자연의 맛을 인간의 욕망에 맞게 바꾸어 온 것입니다.

그 순간 노자가 지나친 자극과 욕망은 인간 본래의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경고하며,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오미는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고 했던 도덕경의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야생 블루베리의 소박하고 시큼한 맛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달콤한 맛을 얻은 대가로, 어쩌면 자연이 주는 날 것 그대로의 깊은 풍미를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오르자 맑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웅장한 산봉우리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한 점 바람에도 쉽게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마음이 먼저 갈 곳을 정하고 안정되어야 비로소 깊은 고요에 이를 수 있다는 대학의 정이후능정이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흔들리는 것은 눈앞의 호수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잔물결일 것입니다.

 

산길은 이윽고 깊은 협곡으로 이어졌습니다. 계곡 아래에서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거센 물줄기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물이 견고한 바위를 끝내 이겨내는 역동적인 모습은,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상선약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연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소리 없이 일러주는 진리였습니다.

 

한참을 걷다 넓은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 떼를 만났습니다. 목동은 두 마리의 양치기개와 함께 수백 마리의 양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앞에서 길을 열고, 다른 한 마리는 뒤에서 무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몰아주었습니다. 양들은 제각기 풀을 찾아 흩어지는 듯하면서도, 두 마리의 개가 잡은 질서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프로방스의 젊은 목동이 밤하늘의 빛나는 별 아래에서 양 떼를 지키며 순수한 사랑을 키워가던 이야기처럼, 눈앞의 목동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문득 가이드가 양들의 흥미로운 습성을 들려주었습니다. 양들은 더운 날에는 오히려 서로 몸을 바짝 붙여 서고, 추운 날에는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상식과 반대되어 의아했지만 설명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더운 날에는 교대로 무리 바깥쪽으로 나가며 열을 식히고, 추운 날에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모두가 햇볕을 고르게 받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미처 짐작하지 못한 깊은 지혜를 품고 있었습니다.

 

막히면 변하고 변하면 결국 통하여 길이 열린다는 주역의 궁즉변 변즉통이라는 가르침처럼, 자연의 생명들은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만든 고집과 욕망의 틀에 갇혀, 변화 앞에서 홀로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긴 하산길에는 예상치 못한 소동이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쇠파리에 다리를 물렸는데, 상처에서 피가 제법 많이 흘렀습니다. 쇠파리는 피를 빠는 동안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성분을 주입하기 때문에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당나라 시인 한유가 쓴 증창승부의 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모기와 벌레들이 살을 파고들어 온 몸을 가렵고 고통스럽게 만들듯, 우리의 욕심과 번뇌 역시 아주 미세한 틈을 타 마음속으로 파고듭니다. 인생을 흔드는 것은 거대한 태풍보다, 방심한 사이에 스며든 사소한 욕망과 번뇌일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레샤피유를 거쳐 마침내 부르생모리스에 도착했습니다. 여장을 풀고 숙소 주변을 돌아보니 작은 소도시가 무척이나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번잡하고 거대한 대도시와 달리, 딱 필요한 만큼의 시설과 적정 규모로 계획된 이 공간을 보며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여 자연 순리에 따르라 했던 노자의 소국과민 사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유럽의 이 작은 도시들이야말로 욕망을 부추기는 거대 도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노자의 가르침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기진 몸을 이끌고 호텔 근처의 작은 식당을 찾았습니다. 이국적인 인상의 중년 여주인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검은 먹물빵으로 만든 수제 햄버거와 짭조름하게 잘 숙성된 햄, 갓 튀겨낸 바삭한 감자튀김, 그리고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생맥주 한 잔은 이번 여정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포만감 속에서 음식은 정갈하면 좋고 지나친 탐닉은 삼가야 한다던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알맞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중이라 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삶의 커다란 기쁨이지만, 맛을 탐닉하는 욕망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좋은 음식은 몸을 활기차게 만들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절제의 미덕은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 마주한 햄버거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은 단순한 포식을 넘어, 고된 산행을 마친 여행자에게 자연이 허락한 다정한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오늘의 여정은 자연이 인간보다 훨씬 오래된 지혜로운 스승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야생 블루베리는 본래의 순수함을 가르쳐 주었고, 고요한 호수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었으며, 거친 협곡은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닫게 했습니다. 초원의 양 떼는 공존과 적응의 지혜를 전해 주었고, 극성스러운 쇠파리는 방심 속에 파고드는 사소한 욕망을 경계하게 했습니다. 아담하고 정돈된 부르생모리스의 풍경은 자족하고 절제하는 삶의 평온함을 일깨워 주었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한 끼의 식사는 따뜻한 위안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몽블랑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발로 땅을 딛는 행위를 넘어, 마음의 눈을 뜨고 삶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거대한 자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 길 위에서 마주친 모든 풍경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으로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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