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토요일, TMB 제5구간의 여정은 오토즈 호텔에서 버스로 비비오 정류장까지 이동한 뒤, 보나티 산장을 거쳐 엘레나 산장으로 향하는 약 8km의 산행이었습니다. 4시간 30분 남짓한 비교적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프스가 펼쳐 보인 장엄한 풍광 속에서 그 어느 날보다 깊은 사색을 마주한 하루였습니다.
출발에 앞서 무사한 여정을 기원하기 위해 들른 쿠르마예르의 작은 성당 앞에는 주황빛 능소화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었습니다.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는 동시에 궁녀의 애달픈 기다림을 품은 이 꽃을 바라보며, 조급함을 내려놓고 긴 시간을 견디어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기다림의 가치와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성당 광장 인근에서는 북극 탐험 중 실종된 쿠르마예르 출신의 전설적인 산악 가이드, 펠리체 올리에르를 기리는 기념비를 만났습니다. 십자가와 함께 인간 대신 충직한 개의 형상이 중심에 서 있는 독특한 조각상이었는데, 이는 극한의 자연에 맞섰던 탐험가의 희생과 동료애를 상징합니다. 능소화의 기다림과 썰매개의 충성은 결국 자신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 숭고한 삶의 태도라는 점에서 깊이 맞닿아 있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산길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데이지 군락이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무리 지어 피어난 꽃들은 홀로 피어날 때보다 함께할 때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는 사실을 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공동체란 경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어줄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삶의 지혜가 그 푸른 들판 위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보나티 산장을 지나 맑은 개울가에서 가진 늦은 점심은 이번 여정의 소박한 행복이었습니다. 돌판 위에 구운 소고기와 라면을 함께 나누고,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아이들처럼 웃고 장난을 치며 문명의 편리함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뜻한 불과 맑은 물, 그리고 곁을 함께하는 사람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충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알프스의 거친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야생 블루베리와 산철쭉 사이에는 강풍과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땅에 바짝 몸을 낮춘 누운 향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인함은 높이 솟아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오래 견디는 겸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멀리 능선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두 그루의 고목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사람의 진정한 품격 또한 평온한 날이 아니라 시련의 시간을 통과할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알프스의 거센 바람은 마치 그 오래된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들려주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건너편으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그랑조라스와 거인의 이빨을 바라보는 순간, 경외감은 이내 무거운 안타까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원을 상징해야 할 만년설이 기후위기와 인간의 탐욕 앞에서 먼지와 자갈을 뒤집어쓴 채 처참하게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대한 쓰레기 더미처럼 변해가는 빙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저지른 일을 고스란히 되돌려 줄 뿐이기에, 그 엄숙한 현실 앞에서 인간 문명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절감하며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엘레나 산장 주변의 넓은 초원에서는 재갈조차 물리지 않은 말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 평화로운 풍경은 말을 길들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 할 때 본래의 생명과 자유를 훼손한다고 보았던 《장자》 외편 「마제」의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도공이나 목수처럼 인간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인위(人爲)적인 작위로 만물의 본성을 해치는 문명 행위가 자연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생명적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자의 통찰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과도 겹쳐졌습니다. 수많은 규칙과 촘촘한 규제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일상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자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유를 보다 넓게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진정 좋은 공동체란 규제를 늘리는 사회가 아니라, 자율 속에서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문화로 완성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알프스에서 보낸 하루는 거대한 자연이 펼쳐 놓은 한 편의 철학 강의와도 같았습니다. 능소화는 기다림의 가치를, 데이지는 연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으며, 누운 향나무는 겸손의 힘을, 세한도의 고목은 절개의 품격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녹아내리는 만년설은 인간의 책임을 매섭게 묻고 있었고, 재갈 없는 말들은 참된 자유의 의미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알프스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을 선물하는 산이 아니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이 위대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자격을 갖춘 존재입니까?"
그 묵직한 질문은 엘레나 산장에 도착한 뒤에도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