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15주간 이어온 고문진보 강의를 마쳤습니다. 《논어》와 《맹자》, 《장자》를 오가며 인간의 본성과 삶의 지혜를 함께 나누었던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7월 1일, 저는 인천공항에서 몽블랑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강단에서 고전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끝나자마자 알프스의 거대한 자연 속으로 들어서는 여정. 마치 책 속에서 배운 삶의 진실을 대자연 앞에서 온몸으로 확인해 보라는 부름처럼 느껴졌습니다.
만년설을 이고 선 몽블랑 산맥의 웅장한 실루엣을 마주하러 가는 길, 좌석 앞 작은 스크린에서는 에머럴드 피넬 감독이 재해석한 영화 《폭풍의 언덕》이 막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브론테의 고전 소설이 가진 애절한 로맨스를 기대했으나, 밀폐된 비행기 객실이라는 공간과 맞물린 영화는 거대한 감옥 안에서 또 다른 감옥을 들여다보는 듯한 서늘한 심리 스릴러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시작됩니다. 비극은 캐서린의 아버지 언쇼가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싹텄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뜻밖에도 하인 넬리였습니다. 그녀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가로채 불태움으로써,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를 영원한 오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들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정보가 차단되고 진실이 왜곡된 결과였습니다. 진심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계급과 혈통이라는 틀 속에서 훼손되었고, 서로를 향한 마음은 끝내 닿지 못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질 순백의 몽블랑을 상상하며 저는 문득 《중용》의 첫 구절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떠올렸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가르침입니다. 히스클리프 역시 처음부터 악한 인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리버풀 거리에서 발견된 어린 고아는 몽블랑의 만년설처럼 순수한 영혼을 지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폭력과 멸시 속에서 그의 선한 본성은 깊은 상처를 입었고, 마침내 증오로 변해 갔습니다.
캐서린 역시 끝까지 히스클리프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에드거 린턴을 향한 사랑을 '계절이 바뀌면 시들어 버리는 숲의 나뭇잎'에 비유했고, 히스클리프를 향한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지하의 바위'에 비유했습니다. "내가 곧 히스클리프다(I am Heathcliff)." 이 한마디는 두 사람의 사랑이 단순한 연정을 넘어 존재 자체의 합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현실은 사랑을 갈라놓을 수 있었지만, 그 본질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존심과 냉혹한 현실, 그리고 넬리가 가로막은 마지막 편지는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끝내 증오로 물들였습니다. 그는 복수를 이루었지만 잃어버린 본성은 끝내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외부의 폭력만이 아니라, 상처를 다스리지 못해 괴물이 되어 버린 자신의 내면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화가 보여 준 요크셔의 황무지는 오늘날 우리의 디지털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넬리는 더 이상 편지를 숨기는 하인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소비하며 확증편향에 갇히고, 서로의 진심은 닿지 않은 채 시스템이 편집한 세계를 진실이라 믿습니다. 기술은 우리를 초연결 사회로 이끌었지만, 역설적으로 더 깊은 고립과 단절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샤모니 숙소에 도착해 바라본 몽블랑의 만년설은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을 침묵하게 만드는 숭고한 고독을 품고 있었습니다. 요크셔의 황무지가 상처로 얼룩진 인간 내면의 광기를 보여 주는 공간이라면, 몽블랑은 욕망과 증오를 모두 내려놓고 본래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대한 성찰의 거울이었습니다.
몽블랑 MTB 여정을 앞두고 만난 《폭풍의 언덕》은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이 왜곡과 단절 속에서 어떻게 증오로 타락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경고이자, 캐서린의 '바위 같은 사랑'을 통해 어떤 현실도 흔들 수 없는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진심은 알고리즘 속에서 길을 잃고, 사람들은 인간의 본모습보다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용》의 가르침처럼 우리에게 처음 주어진 본성은 본래 선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받지 않는 삶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그 선한 본성을 끝내 지켜 내는 일일 것입니다.
15주 동안 강단에서 함께 나누었던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지혜는 몽블랑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폭풍의 언덕》은 인간의 본성이 왜곡과 단절 속에서 어떻게 증오로 변해 가는지를 보여 주었고, 샤모니에서 마주한 몽블랑의 순백의 만년설은 그 모든 상처와 욕망을 넘어 본래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대한 성찰의 거울이 되어 주었습니다. 영화와 고전, 그리고 자연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선한 본성을 끝까지 지켜 낼 수 있는가.
순백의 설산 앞에서 저는 다시금 다짐했습니다. 삶의 어떤 풍파와 시련이 저를 흔들더라도 캐서린의 바위 같은 사랑처럼 변하지 않는 진실함과 하늘이 제게 부여한 본연의 선함을 잃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몽블랑이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책은 그 다짐을 품고 걸었던 몽블랑 여정의 기록입니다. 알프스의 장엄한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여행의 순간마다 다시 떠오른 고전의 문장들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몽블랑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운 삶의 진실을 자연 속에서 다시 읽어 가는 또 하나의 공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 첫걸음을, 몽블랑의 순백의 만년설 앞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