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조각에서 건져 올린 삶의 미학
투르 드 몽블랑(TMB) 제6구간은 약 13km의 산길을 6시간에 걸쳐 걷는 일정이었습니다. 레우슈 산장을 출발해 케이블카를 타고 벨뷔에 오른 뒤, 트리코 고개를 넘어 미아주 산장과 트뤽 산장을 거쳐 레콩타민 몽주아의 퐁테 산장에 이르는 코스였습니다.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쉼 없이 이어져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단했던 것은 몸뿐이었습니다. 마음은 오히려 자연의 품 안에서 사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깊은 사유의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아침 식사 전 산장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습니다. 이웃집 마당에는 폐기된 스키와 낡은 목재를 엮어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수명을 다한 물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여행자들의 쉼터가 된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물건의 진정한 가치는 가격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쓰이느냐에 달려 있음을 말없이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연암 박지원이 떠올랐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사람들이 금은보화나 화려한 건축물만을 장관이라 여길 때, 길가의 깨진 기왓장과 말똥, 소똥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남들이 버려진 것에서 무가치를 볼 때 연암은 새로운 쓰임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원순환과 지속가능성 역시 결국 같은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보물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버려진 것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사람의 안목에 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습니다.
산장 울타리를 따라 설치된 태양광 조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하고 버려질 자원을 다시 살려 쓰는 모습은 환경을 지키는 일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살찐 고양이 한 마리를 보며 풍족함이 반드시 건강이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은 채움보다 비움에, 풍요보다 절제와 균형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간절한 염원과 본질의 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 레우슈 성당에 들러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방명록에는 '대한민국 이어도지키기국민운동 대표 양태룡'이라 적고, 그 아래에 '專心致志(전심치지)' 네 글자를 정성껏 남겼습니다.
전심치지는 『맹자』 「고자」에 나오는 말로, 마음을 한곳에 모아 뜻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맹자는 바둑을 배우는 두 사람의 비유를 통해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얼마나 한곳에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몽블랑의 긴 산길도, 오랫동안 이어온 이어도 지키기 국민운동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 비로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다짐을 이 네 글자에 담았습니다.
성당 앞에서는 뉴질랜드 남섬에서 온 은퇴한 부부를 만났습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서로의 여정이 안전하고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참 따뜻했습니다. 산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도 어느새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가 됩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길 위에서 느끼는 설렘과 기대만큼은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벨뷔에 도착한 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숲길을 걷다 서로 얽혀 자라는 두 그루의 나무를 보았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연리목이라 말했습니다. 순간 백거이의 「장한가」에 나오는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면에는 양귀비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당 현종의 깊은 회한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비익조와 연리지는 사랑의 완성이라기보다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문학은 아름다움 뒤에 슬픔을 품고 있을 때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오전 10시 55분, 트리코 삼거리를 지나 흔들다리를 건넜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실개천처럼 보였던 물줄기가 가까이 다가가니 빙하가 녹아 만든 거센 급류였습니다. 계곡을 뒤흔드는 굉음 앞에서 거리감이 얼마나 쉽게 우리의 판단을 속이는지 실감했습니다.
이 장면은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해야 참된 앎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직접 보고, 듣고, 겪어야 비로소 진실이 드러납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명성이나 소문만으로는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삶 가까이 다가설 때 비로소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우주를 존중하는 길
미아주 산장에서 마신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은 하루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 주었습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하산길에서 초콜릿으로 코팅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으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여행의 행복은 거창한 사건보다 이런 소소한 순간에 숨어 있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오후 4시 48분, 레콩타민 몽주아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의 피로 뒤에 마주한 저녁 식사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설익은 밥과 끊임없이 달라붙는 파리 떼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유의 「증창승부(贈蒼蠅賦)」가 떠올랐습니다. 한유는 더러운 곳을 맴도는 파리를 권세에 아첨하는 소인배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왱왱거리는 파리를 쫓으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진정 내 삶에서 쫓아내야 할 것은 눈앞의 성가신 곤충이 아니라, 마음속에 끊임없이 달라붙는 번뇌와 어지러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음의 눈을 어지럽히는 탐욕을 털어내야 비로소 눈앞의 사람과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법입니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중심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리니, 저녁 식사 자리에 이스라엘에서 온 한 남성이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과거 기갑부대에서 복무했다는 그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면서도, 거대한 배낭을 메고 묵묵히 이 거친 산길을 걸어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다리에 새겨진 고단한 사연이 무엇인지 감히 묻지는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 깊은 곳에 쉽게 꺼내 보일 수 없는 삶의 상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 묵묵한 걸음을 바라보며 장자의 통찰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장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저마다 하나의 깊은 우주를 품은 존엄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몽블랑의 산길 위에서는 국적도,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희미해집니다. 끝내 남는 것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흙을 밟으며 묵묵히 자기 안의 우주를 걸어가는 여행자라는 동질감뿐입니다. 타인의 상처를 침묵으로 존중하고 그가 품은 우주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길 위에서 배우는 인간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성숙을 향해 걷는 인생의 학교
식사 후 숙소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축구장 뒤편 잔디밭에는 젊은 여행자 두 사람이 텐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안락한 숙소 대신 자연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은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작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대신 밤하늘을 온전히 품는 것, 그것 또한 여행을 즐기는 아름다운 방식이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여정은 연암의 혜안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안목, 맹자의 전심치지, 『대학』의 격물치지, 한유가 일깨워 준 마음의 청정함, 그리고 장자가 말한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통찰이 오늘 걸었던 산길 위에서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몽블랑은 단지 눈부신 설산을 감상하는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깊게 다듬어 주는 길이었습니다. 제게 투르 드 몽블랑은 아름다운 풍경을 걷는 여행을 넘어 삶을 배우고, 저 자신을 조금씩 성숙하게 빚어 가는 인생의 학교였습니다